흔들릴 것 같지 않던 마이크로소프트(MS) 제국에도 비상등이 켜졌다. 1980년대 이래 PC 운영체제(OS)의 절대 강자로 군림해온 MS지만 스마트폰과 태블릿PC OS에서 구글과 애플에 밀리면서 입지가 위축되고 있다. 책임론이 불거지면서 화살은 최고경영자(CEO)인 스티브 발머에게로 향하는 모습이다.

빌 게이츠 후계자로 2000년 1월 취임한 발머는 MS를 10년여간 이끌어 왔으나 미래를 보는 안목과 기술적 판단 능력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으며 퇴진 압력에 시달리고 있다. 리더십 문제도 나온다. MS 직원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발머 CEO의 경영 방식에 동의하는가'라는 설문조사에서 40%만이 '그렇다'고 대답했다.

화려해 보이는 CEO 자리에는 언제나 실패와 좌절의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성공 신화를 끝까지 유지한 채 은퇴하는 CEO는 소수에 불과하다. 왜 화려하게 CEO 자리를 꿰찼던 수많은 경영자들이 실패의 수렁에 빠지는 걸까.

◆추락하는 CEO…밀려나는 기업

글로벌 기업에서 CEO 리스크는 갈수록 커지는 추세다. 기술과 시장 흐름이 급변하면서 CEO의 순간적인 판단 착오가 기업을 회복 불능의 나락으로 빠뜨리기도 한다. 휴대폰 강자 노키아는 전 CEO 올리 페카 칼라스부오가 스마트폰 대응에 실패하면서 추락했고 올 들어 CEO를 교체하는 강수를 뒀지만 실지 회복이 쉽지 않다.

세계 2위 PC 업체인 에이서의 지안프랑코 란치 전 CEO도 지난 4월 태블릿PC 등으로 컴퓨터 시장 환경이 빠르게 변화하는 데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에이서는 지난해 하반기 이후 실적 하락과 주가 급락이 이어졌다.

아직 물러나지는 않았지만 가시방석에 앉은 내로라하는 글로벌 IT 기업의 CEO들도 부지기수다. HP의 레오 아포테커,야후의 캐롤 바츠,시스코의 존 체임버스,소니의 하워드 스트링거,인텔의 폴 오텔리니 등이 그들이다. 공통적으로 PC 시대가 저물고 스마트폰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대세가 되는 흐름을 쫓아가지 못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워런 버핏이 운영하는 투자회사 벅셔해서웨이는 CEO를 보고 투자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기업의 존폐 여부는 전적으로 CEO의 역량에 달렸다고 믿기 때문이다.

◆왜 실패의 수렁에 빠질까

실패하는 CEO들은 공통적으로 시장 변화를 앞서 이끌지도,패스트 팔로어(fast follower · 빠른 추격자)로서 제대로 대응하지도 못하는 실수를 범했다. 반면 새로운 강자로 떠오른 기업들의 CEO는 시장 변화를 주도한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아이폰으로 휴대폰 시장 판도를 일거에 바꿔버린 애플이 아니더라도 급속한 기술 발전과 인구학적 변화,글로벌 경제지형도 변화,그리고 지구촌 환경 변화 등은 각 분야에서 새로운 강자를 만들어내고 있다.

현대 · 기아자동차 폭스바겐 혼다 등은 고유가 상황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GM 포드 크라이슬러 등 미국 빅3 자동차 메이커로부터 시장을 빼앗으며 급부상하고 있다. 유럽 변방의 지방은행에서 유로존 최대은행으로 떠오른 스페인 산탄데르은행도 마찬가지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라는 엄청난 시장 변화 속에서 신속하고 과감한 해외 인수 · 합병(M&A)을 통해 승승장구했다.

'과거'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도 공통점이다. 잘나가던 과거에 빠져 전략 수립이나 사람 기용 등의 잘못된 결정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강하다는 얘기다. 노키아와 MS가 맞은 위기는 과거에 안주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실행력이 부족한 경우도 적지않다. CEO의 역할로 비전과 전략 제시가 중요하다지만,실행력이 없으면 무용지물이다. 스티브 잡스의 강한 추진력이 뒷받침되지 않았다면 애플의 성공은 존재할 수 없었다.

프로세스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것도 실패로 가는 길이다. CEO는 회사 내 모든 업무를 하나하나 챙기기보다는 직원의 헌신을 이끌어내는 데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CEO가 프로세스에 과도하게 집착하면 직원들의 창의적 발상을 가로막게 마련이다.

평범한 CEO와 뛰어난 CEO는 일에 대한 열정과 목표기준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낮은 목표를 설정하고 쉽게 만족하는 CEO에게 지금처럼 빠르게 변하는 시장 환경에서 높은 성취도를 기대하기 어렵다. 정보 소스가 제한된 CEO도 실패하기 십상이다. 현실을 제대로 직시하기 위해선 일부 임직원이나 컨설턴트 등에만 정보를 의존해서는 곤란하다.

김수언 기자 soo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