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7월28일 서울 여의도 증권거래소에서 삼성SDI의 2분기 실적 설명회가 열렸다. 당시 김순택 SDI 사장(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장)은 차세대 주력 사업으로 밀던 능동형 유기발광다이오드(AM-OLED)를 삼성전자와 합작해 추진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대신 2차전지 등 에너지 분야 위주로 사업구조를 재편하겠다는 전략을 내놨다.

SDI 내부에서는 "맏형 삼성전자가 유망 사업을 가져가려 한다"는 푸념이 흘러나왔다. 그러나 그룹 차원의 결정을 바꿀 수는 없었다. 이듬해 1월 SDI는 삼성전자와 합작해 세운 '삼성모바일디스플레이(SMD)'로 AM-OLED 사업을 완전히 넘겼다.

지난 27일 발표된 '태양전지 사업 이관'을 계기로 삼성그룹 전자계열 서열 1,2위인 삼성전자와 삼성SDI의 경쟁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줄곧 맏형 삼성전자를 묵묵히 보필하던 SDI가 그룹의 미래가 걸린 핵심 사업을 형으로부터 넘겨 받는 사실상 첫 케이스이기 때문이다.

각각 1969년과 1970년 설립된 두 회사는 지난 40년간 삼성의 전자 분야 사업을 이끌어온 쌍두마차다. 2000년 이후 신사업 영역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였지만 태양전지 이전까지는 대부분 SDI가 주도권을 삼성전자에 '넘기는' 식으로 결론났다.

전자와 SDI의 사업영역 다툼 1라운드는 기존 브라운관을 대체할 'TV용 패널'을 놓고 벌어졌다. SDI는 2001년부터 PDP패널을,삼성전자는 2002년부터 LCD패널을 양산하며 경쟁을 벌였다. 처음엔 PDP가 40인치 이상 대형 TV 시장을 휩쓸었지만 2005년 이후 LCD가 대세를 장악했다.

결국 PDP패널의 부진이 이어지면서 SDI는 2007년 5671억원의 영업적자를 냈고 그룹 수뇌부는 2008년 SDI의 PDP패널 부문을 삼성전자 영상디스플레이(VD)사업부장이 통합 경영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패널 사업 경영권을 삼성전자로 넘기라는 것이다. PDP패널 경영은 지금도 삼성전자가 맡고 있다.

'AM-OLED' 주도권 경쟁은 두 회사 간 경쟁의 2라운드다. SDI와 삼성전자는 2002년부터 각기 다른 방식의 AM-OLED를 개발하기 시작했고 초기 주도권은 SDI가 잡았다. 2003년 6월 세계 최초로 풀 컬러 AM-OLED를 개발한 데 이어 2007년엔 모바일용 AM-OLED를 세계 최초로 양산했다. 반면 삼성전자는 AM-OLED 사업에서 좀처럼 성과를 내지 못했다.

그럼에도 그룹 방침에 따라 SDI는 삼성전자와 합작한 SMD에 사업을 완전히 넘겼다. 초기 지분율은 50 대 50이었지만 올 3월 SMD 유상증자를 통해 삼성전자는 지분율을 64.4%로 높이며 1대주주가 됐다.

이렇듯 줄곧 맏형에게 양보만 했던 SDI는 삼성전자의 태양전지 사업을 넘겨받기로 한 뒤 들떠 있는 모습이다. 회사 관계자는 "2차전지와 태양전지는 연관 분야가 많아 우리가 하면 시너지를 낼 수 있고 빠른 시일 안에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태명 기자 chihir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