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위기를 겪고 있는 그리스에 대한 디폴트(채무불이행) 우려가 날로 깊어지고 있다.

장클로드 융커 유로그룹(유로존 재무장관회의) 의장(사진)은 26일 "국제통화기금(IMF)이 내달로 예정된 그리스에 대한 구제금융을 집행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경고까지 내놨다고 독일 일간 프랑크푸르터알게마이네차이퉁이 보도했다.

◆그리스 구제금융 중단 경고 잇따라

융커 의장은 룩셈부르크에서 열린 한 콘퍼런스에서 "IMF는 자금을 빌리는 측이 12개월 내 상환을 보장할 수 있을 경우에만 기금에서 자금을 지원할 수 있다"며 "유럽연합(EU)과 유럽중앙은행(ECB),IMF 등 3대 기관이 '그리스가 자금 대출 조건을 충족한다'는 결론에 이를 것으로 여겨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IMF가 내달 29일로 예정된 120억유로 규모 대(對)그리스 지원을 시행하지 않을 경우 부족분만큼을 EU가 떠맡아야 한다"며 "하지만 독일과 네덜란드,핀란드 의회에서 그 같은 추가 지원 결정을 지지할 것으로 보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융커 의장의 발언에 대해 마르크 루테 네덜란드 총리도 온라인 방송을 통해 "그리스가 재정적자를 통제하에 둘 수 있다는 점을 증명해야만 IMF의 지원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며 "네덜란드도 IMF의 결정을 주시하고 있으며 IMF가 그리스를 지원하지 않을 경우 네덜란드 역시 돕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IMF 대변인 역시 기자회견에서 "IMF는 모든 프로그램에서 상환 보증을 요구하고 있다"며 "해당 국가가 빚을 줄이는 조치를 하고 다른 자금조달이 가능하다는 걸 확인할 때에만 자금을 지원할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리스에 긴축 압박하기 위한 카드

융커 의장을 필두로 그리스에 대해 '구제금융 중단'이라는 '경고성 발언'이 잇따른 배경에 대해 한델스블라트는 "그리스 정부에 보다 강화된 긴축정책을 시행하도록 압력을 가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 카롤로스 파풀리아스 그리스 대통령은 27일 게오르게 파판드레우 총리를 비롯해 그리스 전 정당 대표가 모이는 긴급회담을 소집,세금 인상과 국영기업 민영화 등 긴축 계획에 대한 거국적 지지를 모색하고 나섰다.

하지만 긴축 반발 시위가 거세 진통이 예상된다. IMF와 EU는 내달 1100억유로 규모 그리스 구제금융 중 5차분 120억유로를 지원할지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이미 실사단을 그리스에 보냈다. 실사단은 그리스의 긴축정책 프로그램을 평가하고 있다.

◆그리스 디폴트 때 리먼보다 심각

융커 의장의 발언이 전해지자 글로벌 금융시장은 크게 출렁였다. 스위스 프랑화 대비 유로화 가치는 이날 하루 0.5% 떨어지며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영국 파운드화 대비로도 유로값이 2개월반 만에 최저 수준으로 추락했다. 반면 미 국채와 독일 국채,금 같은 안전자산으로 투자자금이 몰렸다.

유럽 경제 전문가들 사이에선 이미 그리스가 실질적으로 '파산'할 수밖에 없다는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오트마르 이싱 전 ECB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그리스는 이미 실질적인 파산 상태"라고 주장했다. 폴 크루그먼 미 프린스턴대 교수도 "스페인은 어려움을 극복할지 모르지만 그리스는 채무를 상환하기 힘들어 보인다"며 "그리스가 유로존을 탈퇴할 확률은 50%"라고 전망했다.

볼프강 쇼이블레 독일 재무장관은 "그리스가 디폴트에 빠질 경우 리먼브러더스 사태 때보다 더 심각한 결과가 초래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김동욱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