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사, 공관에 갇혔다가 헬기로 탈출

알리 압둘라 살레 예멘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22일 아랍에미리트(UAE) 대사관을 포위, 외교관들이 공관 안에 갇혀 있다가 간신히 탈출했다고 AP통신이 보도했다.

곤봉과 단검 등으로 무장한 친정부 시위대는 이날 살레 대통령의 조기 퇴진 방안을 담은 걸프협력협의회(GCC)의 중재안에 여야가 합의 서명할 것으로 알려지자 퇴진 협상을 중재한 UAE 대사관을 포위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로 인해 중재안과 관련한 협의차 UAE 대사관을 들렀던 예멘 주재 미국 대사와 유럽국가 대사, GCC 사무총장 등이 공관 안에 갇혀 있다가 예멘 군 헬기를 타고 밖으로 빠져 나왔다고 통신은 전했다.

수백 명에 이르는 친정부 시위대는 이날 앞서 대통령궁, 공항, 사나 타흐리르 광장으로 향하는 도로들을 점거했다가 UAE 대사관으로 몰려 간 것으로 알려졌다.

GCC의 중재안은 33년째 장기 집권 중인 살레 대통령의 사후 처벌 면제를 보장하는 대신, 살레가 중재안에 합의 서명한 뒤 30일 이내에 조기 퇴진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예멘 여야는 GCC 중재안에 대한 수용 방침을 밝히고 이날 서명할 예정이었지만 서명 장소를 놓고 이견을 노출하며 대립, 또 다시 서명식이 무산된 것으로 전해졌다.

여당인 국민의회당(GPC)은 중재안에 대한 합의 서명이 수도 사나의 대통령궁에서 모든 관련 정파가 참여한 가운데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야권은 대통령궁에서 서명식이 열릴 경우 불참하겠다고 맞섰다.

국민의회당은 이날 성명을 통해 "대통령 퇴진과 관련한 여야의 합의 서명은 대통령궁에서 이뤄져야 한다"며 "(대통령궁이 아닌) 밀실에서 이뤄진 합의는 인정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예멘 여당의 이런 주장은 앞서 21일 야권이 GCC 사무총장과 미국, 영국, 유럽연합(EU), 아랍에미리트(UAE) 대사들을 만나 중재안에 먼저 서명한 것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예멘 야권의 한 관계자는 야권 대표가 지난 21일 중재안에 먼저 서명했으며, 살레 대통령도 22일 서명할 것이라고 밝혔다.

야권은 국민의회당의 주장이 트집 잡기에 불과하다며 살레 대통령의 조속한 서명을 촉구했다.

야권 연합체 공동회합당(JMP)의 모하메드 알-카탄 대변인은 "만일 살레가 중재안에 서명하지 않을 경우 반정부 시위는 더욱 격화할 것이며 이에 따라 그는 결국 권좌에서 불명예스럽게 물러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런 가운데 이날 예멘 각지에서는 살레 대통령의 즉각 퇴진을 촉구하는 시위가 전국적으로 수십만 명이 참여한 가운데 열렸다.

예멘 반정부 시위는 석 달 넘게 진행되고 있으며 당국의 강경 진압에 따른 사망자는 160여 명에 이르고 있다.

(두바이연합뉴스) 강종구 특파원 inyo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