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잠재성장률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4% 초반까지 떨어진 것으로 분석됐다. 당초 우려했던 3%대 추락은 면했지만,앞으로 빠르게 하락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19일 '국제금융위기 이후 우리 경제의 잠재성장률 평가'보고서에서 한국 경제의 잠재성장률을 현재 4.3% 내외로 추산했다. 외환위기 전보다 2%포인트 이상 떨어진 수준이다.

◆금융시스템 유지 '효과'

KDI에 따르면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인 2001~2007년의 한국 잠재성장률은 4% 중반이었지만 자본 투입(투자)과 생산성의 성장률 기여도가 낮아지면서 금융위기 이후 4% 초반까지 떨어졌다.

이는 당초 전문가들이 예상한 3%대 후반보다는 높은 수준이다. 삼성경제연구소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인 2009년 말 내놓은 보고서에서 금융위기 충격으로 한국 경제 잠재성장률이 3.8%로 떨어진 것으로 추정했다.

이재준 KDI 연구위원은 "예상보다 잠재성장률이 크게 하락하지 않은 것은 글로벌 금융위기가 직접적으로 국내 금융시스템의 위기로 전이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2008년 이후 미국과 영국 등 주요국들은 금융시스템이 훼손되면서 잠재성장률이 크게 떨어졌을 가능성이 크지만,한국 경제는 금융부문의 '시스템 리스크'가 일어나지 않아 위기가 잠재성장률에 미친 영향이 일시적이고 제한적이라는 설명이다.

KDI는 근거로 지난해 말 기준 은행권의 부실채권 규모(24조5000억원)가 총여신 대비 1.86%에 불과해 금융위기의 일반적 기준인 '총여신의 10% 초과'에 비해 현저히 낮은 점을 들었다.

◆"문제는 지금부터"

권순우 삼성경제연구소 거시경제실장은 "어느 정도의 잠재성장률이 적정 수준이냐에 대한 해답은 없지만 매년 시장에 신규로 들어오는 노동력을 안정적으로 흡수할 수 있을 정도가 되려면 우리의 잠재성장률은 최소한 4% 중반 이상으로 높아져야 한다"며 "그러나 향후 10년을 내다보면 잠재성장률을 끌어올리기는커녕 오히려 빠르게 떨어질 것이란 우려가 더 크다"고 말했다. 노동 투입량이 빠르게 줄고 있는 데다 투자도 지난해 반짝 증가했지만 지속적으로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생산성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보다 훨씬 낮다.

권 실장은 "잠재성장률을 높이는 것보다는 떨어지는 속도를 낮추는 데 정책 목표를 두는 것이 현실적으로 타당하다"며 "낮은 고용률을 끌어올리고 선진국에 비해 특히 낮은 서비스 분야 생산성을 높이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 연구위원도 "정부의 거시정책 목표를 성장잠재력을 초과하는 수준의 성장률을 달성하는 데 두면 오히려 인플레 등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며 "잠재성장률 수준의 안정적 성장을 추구하는 게 맞다"고 덧붙였다.

정부는 올해 성장률 목표치를 KDI의 잠재성장률 추산치인 4.3% 내외보다 다소 높은 '5% 내외'로 설정해놓고 있다.

▶ 잠재성장률

한 나라 경제가 보유하고 있는 노동 자본 기술 등 생산요소를 모두 활용해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의 부작용 없이 달성할 수 있는 최적의 성장률.이에 비해 실질성장률은 실제로 생산한 모든 최종 생산물의 시장가치의 합이다.

정종태 기자 jtch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