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ㆍ옹진군 개발] 섬 전체가 역사유적, 지붕없는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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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니산ㆍ전등사ㆍ광성보 볼만
강화도는 우리나라에서 다섯 번째로 큰 섬으로 1995년 경기도에서 인천광역시로 통합됐다. 수도권이면서 광역교통망,도로,교량 등 인프라 부족으로 지역경제 및 산업이 쇠퇴해 낙후돼 있다.
하지만 순무 인삼 화문석 등의 특산품과 해변 저수지 호수 등 천혜의 자연환경이 어우러져 관광레저 전원도시로 각광받고 있다.
역사 유적의 축소판으로 강화도 전체가 지붕 없는 박물관으로 불리고 있다. 강화는 풍수학상 한반도에서 가장 기(氣)가 센 곳으로 알려져 있다. 마니산 정상에는 단군 왕검이 제사를 지내기 위해 마련했다는 참성단이 있다.
섬의 해안과 강화읍에는 고려시대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숱한 국난을 겪은 역사유적들이 남아 있다. 강화도는 고려시대 몽골항쟁의 근거지로서 39년간 고려의 도읍지로 활용됐으며 조선시대에는 프랑스군이 외규장각,의궤 등 우리 문화재를 약탈해간 병인양요 · 신미양요의 격전지다. 팔만대장경도 처음에 이곳에서 만들어졌다. 외규장각도 이곳에 있다.
강화도의 명소로는 마니산 전등사 보문사 등을 꼽는다. 연개소문이 거처했던 고려산도 진달래꽃으로 유명하고 고려 궁터였던 강화산성과 방어진지인 광성보 괴인돌 지대 등도 가볼 만하다.
하지만 순무 인삼 화문석 등의 특산품과 해변 저수지 호수 등 천혜의 자연환경이 어우러져 관광레저 전원도시로 각광받고 있다.
역사 유적의 축소판으로 강화도 전체가 지붕 없는 박물관으로 불리고 있다. 강화는 풍수학상 한반도에서 가장 기(氣)가 센 곳으로 알려져 있다. 마니산 정상에는 단군 왕검이 제사를 지내기 위해 마련했다는 참성단이 있다.
섬의 해안과 강화읍에는 고려시대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숱한 국난을 겪은 역사유적들이 남아 있다. 강화도는 고려시대 몽골항쟁의 근거지로서 39년간 고려의 도읍지로 활용됐으며 조선시대에는 프랑스군이 외규장각,의궤 등 우리 문화재를 약탈해간 병인양요 · 신미양요의 격전지다. 팔만대장경도 처음에 이곳에서 만들어졌다. 외규장각도 이곳에 있다.
강화도의 명소로는 마니산 전등사 보문사 등을 꼽는다. 연개소문이 거처했던 고려산도 진달래꽃으로 유명하고 고려 궁터였던 강화산성과 방어진지인 광성보 괴인돌 지대 등도 가볼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