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의 변혁을 이끄는 기업.'

'마케팅의 대부'로 불리는 필립 코틀러 미 노스웨스턴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마켓 3.0'이란 책에서 프랑스 식품기업 다논을 이렇게 소개했다. 서비스와 고객만족으로 승부하는 '마켓 2.0'을 넘어 기업활동을 통해 사회적 문제까지 해결하는 '마켓 3.0'을 잘 구현하고 있는 대표적인 기업이라는 의미다.

유제품과 생수 등을 판매하는 다논은 방글라데시 세네갈 등 개발 도상국의 빈곤층도 주요 고객으로 삼고 있다. 이곳에서는 다논 요구르트 배달원들이 가난한 소비자들을 직접 찾아가는 방문 판매를 하고 있다. 개발도상국에는 거리마다 가게가 있는 게 아니어서 사람들이 물건을 사는 게 힘들기 때문이다. 제품을 파는 동시에 현지 주민들에게 일자리도 제공하는 셈이다.

그러나 다논의 이런 활동은 자선행위는 아니다. 프랑크 리부 다논 회장은 "빈곤층에 박리다매로 제품을 파는 과정에서 구축한 유통망을 기반으로 새롭게 사업을 확장한다"며 "사회를 발전시키는 것이 곧 회사의 발전으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다논의 성장 원동력은 신흥시장

다논은 유제품 부문 세계 1위,생수 부문 세계 2위,유아식 부문 세계 2위,환자 영양식 부문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는 글로벌 식품기업이다. 지난해 순익은 18억7000만유로(2조원),매출은 170억유로(26조원)에 달했다.

다논의 성장 원동력은 신흥시장이다. 전체 매출의 44.45%가 이곳에서 나온다. 다논의 신흥국 진출전략은 '마켓 3.0'의 전형이다. 다논은 먼저 제품 가격을 경쟁업체보다 더 낮은 수준으로 책정했다. 미시간대의 애닐 카르나니 교수는 "그동안 신흥 시장에 진출한 기업들은 많이 있었지만 가격이 너무 비쌌다"며 "시장의 규모를 지나치게 크게 평가한 상태에서 마케팅 전략을 펴다가 중산층에 판매하는 데만 그쳤다"고 지적했다. 반면 다논은 'BOP(Bottom of the Pyramid)'시장에 눈을 돌렸다. BOP란 최하위 소득계층을 뜻한다. BOP시장은 연간 5조달러(6000조원) 규모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다논은 인도네시아에서 처음 저가 제품을 팔기 시작했다. 2004년 인도네시아의 다논 지사 직원은 리부 회장에게 인도네시아 국민 2억4000만명 중 200만명만이 다논의 제품을 살 수 있는 돈이 있다고 보고했다. 그는 그 보고를 듣고 인도네시아에서 70g당 10센트(100원)의 마시는 요구르트를 팔기 시작했다. 이 요구르트는 저소득층에 큰 인기를 얻어 지금은 인도네시아 유제품 시장에서 가장 잘 팔리는 제품이 됐다.

그로부터 2년6개월이 지난 후 다논은 방글라데시에서 두 번째 도전을 시도했다. 그라민은행과 협력해 사회적 기업 그라민다논푸드를 설립했다. 현지 우유를 조달하고 현지인을 채용했다. 철저한 현지화 덕에 요구르트를 8센트(80원)에 팔 수 있었다. 2008년에는 세네갈로 사업 영역을 넓혔다. 다논은 세네갈의 회사를 인수해 사업을 시작했다. 다논은 1㎏당 30센트(300원)를 받고 신선한 우유를 판매해 높은 매출을 올렸다. 러시아 멕시코 남아프리카공화국 등에서도 저가에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덕분에 아시아에서의 지난해 매출은 전년에 비해 28.6% 급증했고, 기타(유럽제외)지역에서는 26.7% 늘어났다.

◆"먹을거리가 아닌 건강을 판다"

이 회사의 창업자 이자크 카라소는 1919년부터 요구르트를 만들어 약국에서 팔았다. 아이들이 위생 불량으로 장 질환을 앓다가 죽는 것을 보고 나서다. 카라소는 이를 기반으로 10년 후 프랑스에서 다논을 설립했다.

'최대한 많은 사람들에게 식품을 통해 건강을 전파한다'는 다논의 창립 이념은 92년이 지난 지금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다논은 고객들에게 소비자의 건강을 일생 동안 책임지는 기업으로 각인되겠다는 전략을 펼치고 있다.

다논의 가장 대표적인 상품은 '액티비아'다. 전체 매출의 15%를 차지하고 있다. 임상실험 결과 액티비아를 마시면 음식물이 식도를 통과해 대장까지 도달하는 시간이 38.6~46.4% 줄어드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액티비아를 포함한 유제품의 지난해 매출은 전년 대비 14% 증가해 97억유로(15조원)에 달했다.

생수 제품으로는 '에비앙'과 '볼빅'이 있다. 에비앙은 해발 4800m의 프랑스 알프스에서 만들어 진다. 하루 500만ℓ 이상이 생산되고 있으며 130여개 나라에서 판매된다. 볼빅은 프랑스 오베른 화산지역에서 끌어 올려진다. 지난해 생수 부문 매출도 전년보다 13% 늘어나 28억유로(4조원)를 기록했다.

다논은 유아식 부문에서는 33억유로(5조원),환자 영양식 부문에서는 10억유로(2조원)의 매출을 올렸다.

◆건강친화형 식품에 집중

다논은 1996년을 기점으로 큰 변화를 겪었다. 리부 회장이 그의 아버지의 경영권을 이어 받으며 사업구조를 전면 재편했다. 전임 회장은 요구르트 파스타 사탕 치즈 맥주 등 10개 부문에서 사업을 진행했다. 그는 이를 4개 부문으로 압축해 건강친화형 식품 분야에 집중했다. 사업 정비는 새로운 도약의 발판이 돼 2000년대 들어서는 연평균 8%대의 매출 성장을 이어왔다.

2007년 다논이 20년간 경영해 온 LU를 팔아치운 것도 건강친화형 식품에 집중하기 위해서다. LU는 185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프랑스 내 1위 비스킷 브랜드로 1986년 다논에 인수됐다. 수익성이 좋았는데도 매각한 이유는 비스킷에 들어간 버터와 초콜릿이 사람들의 건강에 좋지 않다는 판단 때문이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