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감정 통제로 식민통치"…일제는 '명랑 사회' 꿈꿨다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불온한 경성은 명랑하라 소래섭 지음/웅진지식하우스/296쪽/1만3800원
1990년 당시 집권당인 민주자유당의 박준규 국회의장은 한 인터뷰에서 의장의 역할에 대해 "정치 풍토의 명랑화"라고 밝힌 바 있다. 그 24년 전인 1966년 1월,박정희 대통령은 새해를 맞아 발표한 연두교서에서 조국 근대화의 과정으로서 '명랑한 사회의 건설'을 내세웠다. 1930년 조선총독부는 '도시 경성의 명랑화'를 식민 통치의 필수 정책으로 내세웠다. 당시 한 언론은 인기 점원이 되는 방법을 소개하면서 '애교 제일,냉소는 금물'이라고 쓰기도 했다.
'명랑' 혹은 '명랑화'라는 말은 조선총독부에 의해 널리 쓰이다가 1990년대 들어 급격하게 종적을 감춘 단어다. 우리가 생각하는 명랑의 의미와 그 시절 명랑의 의미는 다르다. 총독부에서 해방 이후의 권력까지,그들은 왜 명랑이라는 감정을 사용하고 선전했을까.
《불온한 경성은 명랑하라》는 한국 근현대의 감정 문화사를 들여다본다. 그저 '유쾌하고 활발한 기분이나 감정' 정도를 가리키는 말인 줄 알았던 명랑에는 우리 역사가 대면해야 했던 식민 통치와 근대 자본주의의 흔적이 고스란히 새겨져 있다.
저자는 1930년대식 모범 인간 만들기의 아픈 역사를 두뇌 정화에서부터 키스 금지까지 낱낱이 실었다. 총독부가 갑자기 '명랑화'를 내세운 첫 번째 이유로 경성이 근대 대도시로 발전하는 과정을 들여다본다. 1920년대 말 30만명을 조금 넘던 경성의 인구가 행정구역이 확장된 1930년대 중반에 이르면 70만명에 육박한다. 짧은 기간 도시가 팽창하다 보니 주택 보건위생 치안 교통 등 문젯거리가 속출했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경성 명랑화 프로젝트'에 착수한 것.
총독부와 함께 근대 자본주의와 대공황이 한꺼번에 몰려오면서 남성들의 욕망을 자극하고 미소를 파는 온갖 '걸'들을 거리로 내몰았다는 주장도 흥미롭다. 1930년대 급격히 증가한 걸들은 스틱 걸(산책을 즐기는 남자를 부축해주는 여성),가솔린 걸,빌리어드 걸(당구장에서 점수를 세는 여성) 등 종류도 다양했다. 화려한 용모와 미소로 '자본주의의 꽃'이라 불렸지만 신경을 잃어버린 기계처럼 감정을 통제하며 명랑을 연출한 조선 최초의 감정노동자들이었다.
저자는 서문에서 "명랑은 1930년대라는 시대를 지배했던 몇 가지 의도를 관철하기 위해 만들어지거나 발견된 말"이라고 밝힌다. 저자는 '만들어진 명랑'이 아직 끝나지 않고 우리 주변을 맴돌고 있다고 말한다. 쿨한 행동과 감정 포장을 미덕이라 생각하고 세상을 사는 88만원 세대들에게 저자는 '지금이라도 나의 감정을 대면하라'고 충고한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
'명랑' 혹은 '명랑화'라는 말은 조선총독부에 의해 널리 쓰이다가 1990년대 들어 급격하게 종적을 감춘 단어다. 우리가 생각하는 명랑의 의미와 그 시절 명랑의 의미는 다르다. 총독부에서 해방 이후의 권력까지,그들은 왜 명랑이라는 감정을 사용하고 선전했을까.
《불온한 경성은 명랑하라》는 한국 근현대의 감정 문화사를 들여다본다. 그저 '유쾌하고 활발한 기분이나 감정' 정도를 가리키는 말인 줄 알았던 명랑에는 우리 역사가 대면해야 했던 식민 통치와 근대 자본주의의 흔적이 고스란히 새겨져 있다.
저자는 1930년대식 모범 인간 만들기의 아픈 역사를 두뇌 정화에서부터 키스 금지까지 낱낱이 실었다. 총독부가 갑자기 '명랑화'를 내세운 첫 번째 이유로 경성이 근대 대도시로 발전하는 과정을 들여다본다. 1920년대 말 30만명을 조금 넘던 경성의 인구가 행정구역이 확장된 1930년대 중반에 이르면 70만명에 육박한다. 짧은 기간 도시가 팽창하다 보니 주택 보건위생 치안 교통 등 문젯거리가 속출했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경성 명랑화 프로젝트'에 착수한 것.
총독부와 함께 근대 자본주의와 대공황이 한꺼번에 몰려오면서 남성들의 욕망을 자극하고 미소를 파는 온갖 '걸'들을 거리로 내몰았다는 주장도 흥미롭다. 1930년대 급격히 증가한 걸들은 스틱 걸(산책을 즐기는 남자를 부축해주는 여성),가솔린 걸,빌리어드 걸(당구장에서 점수를 세는 여성) 등 종류도 다양했다. 화려한 용모와 미소로 '자본주의의 꽃'이라 불렸지만 신경을 잃어버린 기계처럼 감정을 통제하며 명랑을 연출한 조선 최초의 감정노동자들이었다.
저자는 서문에서 "명랑은 1930년대라는 시대를 지배했던 몇 가지 의도를 관철하기 위해 만들어지거나 발견된 말"이라고 밝힌다. 저자는 '만들어진 명랑'이 아직 끝나지 않고 우리 주변을 맴돌고 있다고 말한다. 쿨한 행동과 감정 포장을 미덕이라 생각하고 세상을 사는 88만원 세대들에게 저자는 '지금이라도 나의 감정을 대면하라'고 충고한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