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년간 몸담았던 공직을 떠났지만 여전히 국가를 위해 봉사하는 전직 관료가 있다. 베트남 라오스 아제르바이잔 등 개발국을 누비며 한국의 경제성장 경험을 전수하는 윤대희 전 국무조정실장(62 · 사진)이 그 주인공이다. 가나 등 4개 개발도상국을 다녀온 윤 전 실장에게는 '경제개발 노하우 전도사'라는 별칭이 붙어 있다.

정부가 진행 중인 개도국 대상 경제개발노하우전수사업(KSP)에 윤 전 실장이 참여한 것은 작년 초부터다. 정부에서 아프리카 가나를 대상으로 KSP 사업을 진행하는 데 전직 장관급이 필요하다는 얘기를 듣고 곧바로 가나로 향했다. "현직 경제장관 3명을 비롯해 고위 관료들이 둘러앉아 우리를 기다리는데 눈빛이 반짝반짝 빛나더군요. 과거 경제개발 5개년 계획과 외국인투자유치 경험 등을 들려줬더니 호응이 너무 좋았습니다. "

윤 전 실장은 이후 KSP 단장 자격으로 아제르바이잔과 베트남 등도 잇따라 방문했다. 이달 초에는 라오스에도 다녀왔다. 현지 관료들이 한국을 배우기 위해 방한할 때도 매번 그가 단장으로 나서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그 과정에서 현지 고위 관료들과 돈독한 친분관계도 쌓았다.

이런 네트워크는 개도국 진출을 추진하는 국내 기업들에도 큰 도움이 되고 있다. 현지 진출한 기업들의 사업이 잘 안 풀릴 경우 중개자로 적극 나서 뚫어 주는 역할을 해내고 있는 것.STX가 지난해 가나의 초대형 주택건설 사업 수주전에 뛰어들었을 때가 대표적인 사례다.

"가나 정부 관리가 STX의 주택건설 사업 경험을 궁금해 하길래 이렇게 얘기했죠.'STX는 세계적인 선박회사이고 크루즈 건조까지 나서는데,크루즈는 바다에 떠있는 호텔이다. 호텔을 짓는 기업인데 주택건설은 누워 떡먹기'라고 했더니 고개를 끄덕이더군요. "

STX는 경쟁업체들을 제치고 작년 말 100억달러 규모의 사업계약을 성사시켰다. SK C&C가 아제르바이잔에서 지능형교통시스템(ITS) 사업권을 따낼 때도 윤 전 실장은 적극 지원자로 나섰다. 그는 "개도국 관료들에게는 한국이 벤치마크해야 할 1호 국가로 꼽힌다"며 "이들은 인천공항에 들어설 때부터 입이 벌어져 삼성전자 현대차 포스코 등 산업현장을 둘러보고 나서는 그야말로 감탄사를 연발하고 돌아간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직 아쉬운 게 한 가지 있다. 우리의 개발 경험 상당수가 기록으로 축적돼 있지 않다는 점이다. 세계에서 우리나라에만 있는 교육방송의 설립 과정이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경험 등 개발연대 노하우들에 대한 기록이 없어 전수해 주고 싶어도 그럴 수 없다는 것이다. 윤 전 실장은 "월스트리트저널 한국 특파원을 지낸 마이클 슈만이 쓴 '더 미라클'이란 책을 요즘 읽고 있는데 한국의 성공 스토리를 우리보다 더 잘 정리했다"며 "우리 정부가 배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공직생활 33년간 국가의 은덕을 입었는데 이젠 국가를 위해 진짜로 봉사할 때가 아닌가 싶다"며 "앞으로도 한국의 경제발전 경험이 개도국에 확산돼 제2,제3의 코리아 성공신화가 만들어지도록 힘쓰겠다"고 말했다.

윤 전 실장은 행시 17회로 재정경제부 공보관,국민생활국장,기획관리실장 등을 거쳐 노무현 정부 때 청와대 경제수석과 국무조정실장(현 국무총리실장)을 끝으로 공직에서 은퇴했다. 법무법인 율촌 고문으로도 활동 중이다. 2008년부터 경원대 석좌교수도 맡아 한국경제론과 국제금융론을 가르치고 있다.

정종태 기자 jtch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