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품 허위 거래를 통한 비자금 조성 의혹을 받고 있는 오리온그룹이 세무조사 과정에서 의심을 피하기 위해 사지도 않은 그림을 긴급 공수해 전시한 것으로 조사됐다.

9일 검찰에 따르면 오리온그룹은 지난해 국세청 세무조사를 받는 도중 서미갤러리에 있는 '폴리펙테이트 소디엄(Polypectate Sodium)'이라는 그림을 임시로 가져와 청담 마크힐스 샘플하우스에 걸어놨다. 이 그림은 영국 미술가 대미언 허스트의 '닷 페인팅(Dot painting)' 시리즈 중 2004년작으로 아편 · 모르핀 · LSD 등 마약 성분이 함유된 알약을 상징하는 점의 나열을 그렸다. 시가는 16억원으로 추정된다.

오리온그룹은 서울 청담동의 고급 빌라인 '마크힐스' 부지를 부동산 시행사 '이브이앤에이'에 팔면서 실제 거래가격보다 낮은 가격으로 넘기는 것처럼 '다운계약서'를 작성해 40억6000만원의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를 받고 있다.

오리온그룹은 이 가운데 16억원은 허스트 그림을 사는 것처럼 꾸미고 20억원은 홍송원 서미갤러리 대표에 대한 채무 변제,4억원은 이브이앤에이에 대한 거래대금 지급 등으로 위장한 것으로 조사됐다.

국세청 세무조사팀은 오리온그룹이 세무조사 기간 중 이 그림을 구입하지도 않은 채 임시로 가져온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그러나 검찰 수사 결과 이 같은 정황이 드러났다.

사건을 담당한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3부(부장검사 이중희)는 지난 6일 오리온그룹의 비자금 조성에 관여한 혐의(범죄수익 은닉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위반) 등으로 홍 대표를 구속했다. 홍 대표는 오리온그룹 계열사 등 고객이 위탁 판매를 맡긴 미술품들을 은행에 담보로 맡겨 80억~90억원을 대출받아 횡령한 혐의도 받고 있다.

이 중에는 오리온그룹의 미디어 관련 계열사 M사가 소유했던 미국 팝아티스트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작품 '스틸라이프'가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홍 대표가 비자금 조성에 도움을 준 기업들이 더 있을 것으로 보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검찰은 지난달에는 오리온그룹 비자금 조성에 대한 전반적인 내용을 직 · 간접적으로 지시한 의혹을 받고 있는 조모 사장을 구속했다. 검찰은 조씨의 비자금 조성이 담철곤 회장 등 오너 일가의 지시에 따라 이뤄진 것인지 여부도 수사하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담 회장을 소환 조사할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임도원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