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호텔 사건과 매뉴얼의 함정 '이건희 회장, 냉장고 폭발때는…'
신라호텔 한복 사건으로 떠들썩하다.
논란의 본질이 무엇이던 신라호텔은 큰 상처를 입었다.
설명하고 해명해도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 같다.
신라호텔은 억울한 것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원인제공자임은 분명하다.
따라서 사람들의 인식에 맞서려 하면 할수록 상처는 깊어질 것이다.
한편으론 오너이자 CEO인 이부진 사장 입장에서는 다행스런 측면이 있다.
취임초기 이처럼 어려운 일을 스스로 이겨 나가면서 많은 것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철저히 반성하고 실패에서 배우려고 한다는 점을 전제로 한 것이다.
이 사건을 보고 몇가지 생각나는 것을 적어봤다.

◆에피소드 1.

2010년 어느날.
미국인 A씨는 비행기를 타기 직전 네델란드 항공사 KLM 직원과 마주쳤다.
A씨에게 다가온 한 직원이 불쑥 선물을 건넸다.
뉴욕에 있는 모든 ‘풋볼 바’에 관한 내용이 담긴 '론리플래닛' 가이드였다.
론리플래닛은 유명한 여행관련 안내서다.
축구 애호가였던 A씨는 뜻밖의 선물에 감동했다.
어떻게 된 일일까.
KLM은 2010년 11월 서프라이즈팀을 만들었다.
말그대로 손님들에게 놀랄만한 경험을 제공하는게 이들의 임무였다.
A씨가 포스퀘어에 자신의 위치를 표시하자 이 팀은 즉시 씨에 대한 정보를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가 과거 트윗한 내용중 “PSV아인트호벤의 게임이 그립다”는 것을 찾아냈다.
팀은 어떤 기념품이 좋을까를 고민했다.
그가 뉴욕에 거주하는 것에 착안해 그들은 '뉴욕+풋볼'이라는 조합을 찾아냈다.
그리고 추천할만한 풋볼바가 들어있는 가이드북을 포장해 선물한 것이다.
trendwatching.com 이란 사이트에 나온 에피소드다.
컨설팅도 하는 이 회사는 4월의 키워드로 ‘Kindness’를 제시했다.
친절함.
당연한듯 하지만 소셜네트워크 확산으로 이 단어의 중요성은 더욱 높아졌다는 얘기다.
소비자들이 정보뿐 아니라 감정을 마구 쏟아내는 소셜의 특성때문이다.
개인적인 정보와 감정의 유통이 빨라진다는 것은 기업에는 기회이자 리스크다.
좋은 경험이나 나쁜 경험 모두 퍼져나가는 속도가 빠르기 때문이다.
또 감정과 정서가 유통되는 채널인만큼 인간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천편일률적 기념품으로는 누구에게도 감동을 주기 힘들다.
“섬세하게 고려하고,치밀하게 편집한,비정기적인 행동”
소셜네트워크 대응 지침이다.
고객을 감동시키란 말이다.

하지만 이런 대응지침을 실천하기는 무척 어렵다.
정서와 감정을 고려하는 것은 매뉴얼에 담기 힘들기 때문이다.
매뉴얼은 어쩌면 대량생산 시대에 걸맞는 도구인지도 모른다.
더 빨리 더 싸게 만드는 생산방식.
그러나 이는 새로운 시대와는 왠지 어울리지 않는다.
결국 매뉴얼이 성공의 공식이 아닌 실패의 함정이 될수도 있지는 않을까.
일본의 지진대응에서 보는 것처럼 말이다.

<<아마 신라호텔 직원은 매뉴얼대로 한복이 식당에서 위험하다고 경고했을 것이다.
한국 기업가운데 가장 매뉴얼이 잘 갖춰져 있는 삼성그룹 계열사이니 말이다.
그러나 매뉴얼에 한복에 평생을 바쳐온 사람의 개인 기호는 담겨있지 않았다.
아니 담겨 있을수도 없는 것이다.
매뉴얼의 함정은 어쩌면 신라호텔에만 해당되는 게 아닐수도 있을 것이다.
모든 삼성계열사의 문제가 될수 있다는 생각도 어렴풋이 든다.>>

◆에피소드2

2009년 10월중순.
삼성전자는 금융위기에도 불구하고 사상 최대 실적을 거둬가고 있었다.
그러나 어느날 악재가 터졌다.
경기도 용인에서 냉장고가 폭발한 것이었다.삼성전자는 어떻게 대응했을까.
신속하게 움직였다.
20일이 지난 10월29일 삼성전자는 리콜 결정을 내린다.
한달이 채 안걸린 신속한 수습이었다.
인상적인 것은 이 리콜에 이건희 회장을 끌어들인 것이다.
삼성은 이 폭발 사건을 보고받은 이 회장이 엄청나게 화를 냈다는 내용을 함께 전했다.
"벽하지 않은 제품은 시장에 내놓으면 안된다"는 메시지와 함께.
다음날 언론 기사의 제목은 대부분 “이건희 회장,냉장고 폭발에 진노”로 나갔다.
“불량은 암이다”라는 그의 지론과 함께.
폭발사고 수습책이 이 회장의 품질에 대한 집념으로 둔갑(?)하는 순간이었다.
이 회장이 진짜 진노했는지는 아무도 확인할 수 없다.
그러나 ‘품질=이건희’라는 등식이 사람들 머릿속에 자리잡고 있었다.
그래서 상당수는 수긍했다.인식과 스토리를 활용,위기에 대처한 것이다.

<<이부진 사장이 한복 관련 사건의 당사자를 찾아가 사과했다는 얘기가 나왔다.
그러나 트위터에 이 사건이 도배되는 오전 내내 신라호텔은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이 사장의 사과는 그냥 묻혀버리고 말았다.
위기에 내세울 수 있는 가장 좋은 상품은 진실과 CEO가 아닐까.
안타까운 것은 삼성의 문화다.
오너에게 "카메라 앞에서 사과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라는 말을 누가 할수 있었을까.>>


◆에피소드3.

2004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부시는 공화당의 전통대로 공약을 내걸었다.
단골 메뉴는 세금이었다.세금감면은 일반적으로 ‘tax cut’이라고 표현한다.
그러나 부시는 ‘tax relief’란 생소한 슬로건을 들고 나왔다.
세금감면에는 부자들에게 시혜를 베푸는 듯한 어감이 담겨 있었다는 것을 의식한 것이다.
부시는 세금구제란 표현을 썼다.
세금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구하겠다는 이미지를 심어주고자 한 것이다.
이 캠페인은 나름 성공을 거뒀다는 평가를 받았다.
같은 표현도 단어선택에 따라 어떻게 달리 받아들여지는가를 보여준 사례다.

<<신라호텔 사건에서는 위험이라는 두글자가 한복과 겹쳐졌다.
호텔 직원은 한복입고 식사를 하면 위험하다는 경고를 했을 것이다.
이말을 일반인들이 들으면 '조심해야겠다' 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상대는 한복에 인생에 많은 것을 걸어온 사람이다.
그에게는 “한복=위험한 옷”이라는 말로 들릴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물론 매니저가 "원칙적으로 운동복과 한복은 출입금지"라고 했다는 말도 있다.
불씨에 기름을 부은 셈이다.걷잡을수 없는 사태를 자초한 것이다.
설령 그말을 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이미 '위험'이란 두글자만으로도 충분했다.
신라호텔은 물론 삼성그룹의 이미지에 큰 타격을 주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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