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그룹이 2차전지 시장에 진출한다. 정범식 호남석유화학 사장(사진)은 지난 주말 기자들과 만나 "미국 ZBB에너지와 공동으로 대형 배터리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며 "ZBB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방문할 정도로 이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기술을 갖고 있는 회사"라고 밝혔다. 그는 "2015년까지 4000억원 규모의 비즈니스로 키울 것"이라며 "2차전지 핵심소재인 전해질과 분리막도 연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발전소에 쓰이는 집채만한 배터리

호남석유화학은 ZBB에너지와 지난 1일부터 아연브롬 화학흐름전지(CFB) 개발을 시작했다. 내년 6월 말까지 총 투자비 600만달러(65억원) 가운데 절반인 300만달러를 부담하기로 했다. 호남석유화학 관계자는 "작년 1월부터 자체적으로 CFB 연구를 해왔다"며 "ZBB가 보유한 실증단계 기술을 기반으로 올해 상용화 수준인 3세대 기술 공동연구를 진행 중"이라고 설명했다.

아연브롬 화학흐름전지는 에너지 저장 분야에서 주목받는 기술 가운데 하나로 호남석유화학은 500㎾h 규모의 모듈을 개발할 계획이다. 정 사장은 "전기자동차 수백대에 해당하는 용량으로 크기는 집채만할 것"이라며 "발전소든 집이든 태양광,풍력 등 신재생에너지로 만들어진 전기를 저장할 곳이 필요하고,이 배터리가 그 역할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대표적 전기차인 GM의 쉐보레 볼트에 쓰이는 2차전지의 용량은 16㎾h 수준이다.

◆국내 업체,중 · 대형으로 영역 확대

지난해 세계 소형 2차전지 시장에서 점유율을 크게 늘린 국내 업체들은 중 · 대형 시장까지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일본의 IIT에 따르면 지난해 리튬이온 소형 2차전지 시장에서 삼성SDI는 20.0%,LG화학은 15.0%로 1,3위에 올랐다. 1위를 지켜오던 산요는 19.3%에 그치며 2위로 밀렸고,소니는 11.9%로 4위에 머물렀다.

일본 대지진 등의 영향이 겹치며 국내 기업들의 점유율이 올해 40%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자동차와 ESS(에너지저장시스템)용 중형 시장을 향한 발걸음도 빨라지고 있다. 이달 초 LG화학은 세계 최대 규모의 전기차 배터리 공장을 준공한 데 이어 곧바로 3공장 착공 계획을 내놨다. ESS시장에선 지난해 9월과 10월,삼성SDI와 LG화학이 잇따라 미국 업체와 제품 공급 계약을 맺었다.

◆아파트 단지엔 대형,가정엔 중형

호남석유화학의 진출 선언으로 미래 성장동력으로 대형 배터리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지난 1월 여수산업단지 정전사고 이후 안정적 전력공급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는 것도 대형 배터리 시장 확대에 긍정적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일본 대지진과 정전사고 이후 전력을 저장했다 필요할 때 쓸 수 있는 대형 배터리의 필요성이 커질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1990년대 일본 업체들이 니켈 계열 전지로 워크맨,CD플레이어 등을 장악한 데 이어 지난 몇 년 사이 국내 기업들이 리튬 계열로 승기를 잡았던 2차전지 시장이 새로운 변화의 시기를 맞았다는 분석도 나온다. 2차전지가 스마트폰 등 휴대기기와 자동차로 확산된 뒤 발전 분야에 적용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호남석유화학 관계자는 "대형 배터리는 도서산간 지역,전기차 충전소 등에서도 쓰일 수 있을 것"이라며 "스마트그리드(지능형전력망)가 확산되는 2018년께부터 수요가 크게 늘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 대용량 저장 배터리

신재생에너지 발전소에서 불규칙하게 발생하는 전기를 저장하기 위한 2차전지.전문가들은 아연과 바나듐 계열이 용량 면에서 장점이 있는 것으로 평가한다. 집채만한 크기로 배터리 하나가 일종의 작은 공장이다.


조재희/김동욱 기자 joyja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