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거래소 등 금융감독당국이 '클린 코스닥'을 외치며 내놓은 방안 중 하나인 스팩(Special Purpose Acquisition Company,SPAC)이 잇단 합병 소식을 전해오고 있다. 스팩이 한국증시에 등장한 지 1년여 만에 성사된 인수ㆍ합병(M&A)이다.

하지만 합병 결의가 돌연 취소되거나 일종의 '블라인드 펀드'로 알려진 스팩의 주가가 합병 직전에 치솟는 등 부작용도 잇따르고 있다. 여기에 애초 신재생에너지, 로봇 등 첨단산업 내 기업을 끌어오려던 목적이 변질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14일 증권업계 등에 따르면 지난달 30일 교보KTB스팩이 마스크팩 전문업체인 제닉과 합병키로 결정했었다. 그러나 이날 오후 이 M&A는 '없던 일'이 돼 버렸다. 대신증권스팩이 3월 중순 업계 최초로 합병을 발표해 M&A 시장에 활기가 돌던 때 찬물을 끼얹은 격이다.

'2호 합병'이 될 뻔한 교보KTB스팩은 오히려 피합병 대상기업인 제닉이 '사실무근'이라고 밝히고 나서 더 황당한 경우다. 제닉이 이사회를 열어 합병을 결의하지 못했는데 이러한 내용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고, 교보KTB스팩이 서둘러 금융감독원에 합병을 신고한 것이다. 섣부른 일처리라는 시장의 비난을 피할 수 없었다.

교보KTB스팩은 이후 정정공시 등을 통해 '합병 취소' 사실을 다시 알렸다. 결국 이 스팩은 공시번복으로 '불공정공시법인'으로 지정됐으며, 업계 안에서도 지울 수 없는 '오점 스팩'이 됐다. 제닉은 최근 기업공개(IPO)를 통해 직접 증시입성을 진행키로 결정했다.

또 쉽게 이해되지 않는 주가흐름도 요새 자주 입에 오르고 있는 문제다.

대신증권스팩은 실제 터치패널 제조사인 썬텔과 합병발표 전날 상한가(가격제한폭)로 치솟았다. 신영스팩과 HMC스팩의 경우엔 급등급등하지는 않았지만, 합병 전날까지 눈에 띄는 오름세를 보였다. 신영스팩은 합병에 따른 거래정지 전날까지 5거래일 중 4거래일이 올랐고, HMC스팩은 10거래일 중 7거래일이 뛰었다.

일반 투자자들은 합병 직전까지 스팩의 투자분야와 경영진에 대한 정보만 알 수 있다. 구체적으로 어떤 기업을 인수하게 될지 전혀 알려지지 않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스팩은 일종의 '블라인드 펀드'와 유사한 성격을 갖는다.

잇단 제조업체와 합병 발표는 가장 최근 도마 위에 올랐다. 지난해 3월부터 등장한 스팩들은 일제히 신재생에너지, 로봇기업, 2차전지 등 첨단기업을 M&A할 계획이라고 밑그림을 그려놨기 때문이다.

합병 실패로 이어진 마스크팩 전문업체를 비롯해 합병에 성공한 자전거 생산업체, 자동차부품 업체 등을 일컬어 시장에서 첨단기업으로 부르지는 않는다.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제조업체의 경우 매출액과 영업이익, 순이익에 대한 예측이 비교적 정확해 합병시 이해관계자들간 큰 이견이 없는 게 사실"이라며 "예상실적에 대한 가치평가가 명확한 제조업체를 합병 대상으로 고른 곳들이 비교적 쉽게 합병을 이뤄낼 수 있었던 것 같다"고 진단했다.

스팩은 합병대상의 토지 및 건물(자산가치)과 예상실적(수익가치), 상대가치 등을 평가해 합병 여부를 결정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반 투자자들이 M&A 시장에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스팩의 합병이 앞으로 '봇물'을 이룰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앞으로 '진짜' 첨단기업을 끌어올 스팩에 대한 시장의 관심이 몰리고 있다.

한경닷컴 정현영 기자 jh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