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이 13일 내놓은 협력사와의 동반성장 협약은 지원규모와 내용 면에서 상당히 '파격적'이다.

규모 면에서 삼성전자 등 주력 계열사는 올해 협력사에 총 6100억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삼성전자가 작년 하반기에 발표한 올해 동반성장 지원액 2100억원을 4100억원으로 늘렸고 나머지 8개 계열사가 2000억원을 모으기로 했다. 김영도 삼성전자 상생협력센터 상무는 "협력사에 연구 · 개발비 1860억원을 지원하는 것과 운영자금을 대출하는 것 등을 포함한 금액"이라고 설명했다.

협력사를 위한 세부 지원내용도 크게 달라졌다. 우선 기업의 핵심자산인 특허를 협력사들에 무료로 제공하기로 했다. 예를 들어 TV용 부품을 만드는 협력사가 부품특허를 쉽게 찾아보고 공유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삼성 관계자는 "수만건에 달하는 모든 특허를 완전히 오픈하는 건 아니고 공동 기술개발을 하는 협력사를 대상으로 시행하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중소기업의 특허를 신뢰성 있는 전문기관에 보관해 기술 유출을 막는기술 임치(任置)제도도 적극 활용하기로 했다. 협력사의 기술을 침해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또 협력사의 자금난을 덜어주기 위해 이전처럼 납품대금을 현금으로 결제하는 비율을 계속 100%로 유지키로 했다. 납품대금 지급 횟수도 현재 월 2회에서 월 3회로 늘려 협력사들이 자금흐름을 원활히 유지하도록 돕기로 했다. 원자재 가격변동에 맞춰 협력사들을 대상으로 단가를 조정하는 방안도 추진하기로 했다.

삼성은 계열사별로 동반성장 전담부서를 운영하고,각 계열사 구매담당 임원들의 인사고과를 평가할 때 협력사와의 동반성장 이행 여부를 반영한다는 계획도 내놨다. 이 밖에 1차 협력사를 평가할 때 2차 협력사와의 상생 여부를 평가항목에 넣고,1 · 2차 협력사들 간에 표준하도급 계약서를 사용하도록 하며 60일 이상 어음 결제를 없애는 방안도 추진키로 했다.

삼성의 이 같은 동반성장 협약에 대해 협약 체결을 앞둔 다른 대기업들은 곤혹스러워하는 분위기다. 지난달 29일 현대자동차그룹이 작년보다 1300억원 늘어난 4200억원을 협력사에 지원하겠다고 발표한 데 이어 삼성도 당초 계획을 뛰어넘는 '보따리'를 풀었다는 점에서다.

A그룹 관계자는 "삼성처럼 우리도 당초 생각했던 것 이상을 내놔야 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당장 오는 18일 동반성장협약식을 앞두고 있는 LG그룹은 발표내용 수위를 두고 고민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전국경제인연합회 관계자는 "정부의 압박강도가 세지는 만큼 앞으로 동반성장 계획을 내놓아야 하는 대기업들은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며 "이미 많은 대기업들이 자체적으로 상생노력을 해오고 있는데 지금과 같은 협약식은 마치 정부에 성의를 보이라는 무언의 압력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날 동반성장 협약식엔 김순택 미래전략실장,최지성 · 이윤우 삼성전자 부회장,박종우 삼성전기 사장,오창석 삼성테크윈 사장 등 삼성 경영진과 삼성전자 협력사 모임인 협성회 이세용 회장(이랜텍 대표) 등 1,2차 협력사 대표,김동수 공정거래위원장과 정운찬 동반성장위원장,손경식 대한상공회의소 회장,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 회장,정병철 전국경제인연합회 상근부회장이 참석했다.

최지성 삼성전자 부회장은 "(동반성장은) 30년 전부터 추진하고 강화해오던 것인데,협약식을 기회로 더욱 열심히 하겠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이태명/김현예 기자 chihir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