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원전 사태 '체르노빌 수준' 상향] 日, 원전사고 한달만에 '최악' 인정…계속되는 餘震이 '복병'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원전 인근 20㎞에서 30㎞로…대피구역 설정도 '뒷북'
美는 日 사고발생 직후 자국민 80㎞밖 대피 지시
"체르노빌 능가할 수도"…도쿄전력 경고
규모 7~8이상 여진땐 원전 통제불능 빠질 수도
美는 日 사고발생 직후 자국민 80㎞밖 대피 지시
"체르노빌 능가할 수도"…도쿄전력 경고
규모 7~8이상 여진땐 원전 통제불능 빠질 수도
"사고 규모는 체르노빌 원전 사고와 같지만 형태와 내용은 크게 다르다. "(에다노 유키오 관방장관) "후쿠시마 원전의 방사성 물질 유출량은 체르노빌의 10% 정도 수준이다. "(일본 원자력안전보안원)
일본 정부는 12일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등급을 기존 5등급에서 최고 7등급으로 올리고도 사상 최악의 원전 사고였던 체르노빌 원전과는 성격이 다르다고 애써 강조했다. 그러나 일본 정부가 그동안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축소 평가하다가 뒤늦게 사고 등급을 올렸다는 점에서 발표 내용을 곧이 곧대로 믿을 수 없다는 지적도 있다. 특히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수습되지 않은 상황에서 여전히 강한 여진이 이어지고 있어 앞으로 예측불허의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최악 사태' 뒷북 인정
후쿠시마 원전 사고 발생 초기 일본 원자력안전보안원이 사고 수준을 5등급으로 판정했을 때 이미 프랑스 원자력안전위원회(ASN) 등 서방의 전문기관에서는 6등급 이상의 사고로 분류했다. 당시 미국의 한 싱크탱크는 "상황이 많이 악화하고 있다"며 "지금은 6등급으로 분류될 수 있겠지만 7등급으로 바뀔 수 있다"고 전망했다.
그러나 일본 정부가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심각성을 최고 등급인 7등급이라고 인정한 것은 사고가 발생한 지 꼭 한 달 만인 12일이었다. 일본 정부의 사고 등급 상향 조정은 '뒷북치기'라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일본 정부가 지난 11일에야 후쿠시마 원전 인근의 대피지역을 일부 확대하기로 한 데 대해서도 "너무 뒤늦은 조치"라는 지적이다. 일본 정부는 지금까지 후쿠시마 원전으로부터 반경 20㎞ 이내의 주민은 '대피 지시',반경 20~30㎞에 사는 주민은 '옥내 대피' 조치를 취했다가 30㎞ 밖의 일부 지역에 대해서도 방사성 물질 검출량에 따라 대피 지시를 내리기로 했다. 미국 정부는 사고 발생 직후 부터 반경 80㎞ 이내의 미국인에게 대피 지시를 내렸다.
◆체르노빌과 정말 다른가
25년 전인 1986년 4월26일 발생한 체르노빌 원전 사고는 원자로가 한순간에 폭발해 인근 주민들이 미처 대피할 틈도 없이 큰 피해를 입었다. 원자로 폭발사고로 방사성 물질이 대량 확산돼 사고 직후 56명이 사망하고,이후 수천명 이상이 방사선 피폭에 따른 후유증으로 숨졌다. 당시 체르노빌 원자로는 '흑연감속로'로 고온에서 불이 잘 붙는 흑연을 감속재로 사용한 데다 별도의 격납용기도 없어 폭발에 취약한 상태였다.
반면 '비등형 경수로'인 후쿠시마 원전은 원자로에서 물을 끓여 수증기를 만들고,그 힘으로 터빈을 돌려 발전하는 방식이다. 강철로 된 격납용기에 둘러싸여 있어 비교적 안전한 모델로 꼽힌다. 사고의 경과도 한 달여에 걸쳐 서서히 진행돼 갑작스런 폭발에 의해 발생한 체르노빌 사고와는 성격이 다르다. 체르노빌과 달리 직접적 피해에 의한 사망자도 아직은 발생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후쿠시마 원전 사고 영향이 체르노빌 원전 사고보다 작다고 말하긴 이르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현재진행형이다. 언제 마무리될지 알 수 없다. 이 원전을 운영하는 도쿄전력 관계자는 "방사선 유출량이 결국에는 체르노빌 수준에 이르거나 능가하는 상황을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교도통신이 전했다. 사고 지점 인근에 여진이 계속되고 있는 점도 큰 불안요인이다. 만약 후쿠시마 원전 인근에서 규모 7~8 이상의 강진이 또다시 발생해 원전이 통제 불능의 상태에 빠지면 사고의 정도가 어느 수준까지 이를지 가늠하기 어렵다.
요미우리신문은 "11일 후쿠시마현 인근에서 규모 7.0의 강진이 일어난 이후 하루 동안에만 30차례 이상의 여진이 이어졌다"며 "12일에는 수도권인 지바에서도 규모 6.3의 지진이 발생하는 등 여진 공포는 앞으로 수개월간 이어질 전망"이라고 보도했다.
원자로의 격납용기 손상이 어느 정도인지도 정확히 파악되지 않고 있다. 일본 정부는 원전 2호기의 격납용기 일부가 손상됐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을 뿐이다.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 전 위원장인 피터 브래드포트 씨는 "원자로 냉각에 실패한다면 체르노빌과 유사한 상황에 직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무기 확산 방지를 위한 비영리 재단인 플라우셰어스 펀드의 조 시린시온 회장은 "일본 정부가 상황을 수습하지 못한다면 노심 일부 용융에서 완전 용융으로 갈 것이고,이는 재앙"이라고 말했다. 후쿠시마 원전이 체르노빌 사고를 능가하는 최악의 재앙이 될 가능성은 여전히 열려 있다는 얘기다.
도쿄=차병석 특파원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