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기름값 강제 인하의 역풍을 맞고 있다. 국민들 사이에서 이제는 유류세를 인하하라는 요구만 높여 놓고 말았다. 김황식 국무총리가 국회에서 유류세 인하를 검토하겠다고 밝히면서 더는 유류세를 내리지 않고는 못버틸 지경에 이르렀다. 정부가 섣불리 시장가격에 개입하면서 되레 궁지에 몰린 꼴이다.

정부의 처지는 보기에도 안쓰럽지만, 가격통제라는 무리수에서 빚어진 당연한 귀결로 볼 수밖에 없다. 시장가격 체제는 가격 움직임에 따라 수급이 조절되면서 시장이 새로운 균형을 찾아가도록 '보이지 않는 손'이 작동한다는 신념과 원리에 기반한 것이다. 정부가 이 같은 기본원칙을 무시하고 가격에 개입하다 보니 예상치 못한 곳에서 자꾸 문제가 불거지는 것이다. 공기업의 부채가 큰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고 있지만 한국전력이 누적부채에다 작년까지 3년 연속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는 것도 같은 연유다.

전기요금은 억누르고 기름값은 오르다 보니 그 결과가 수익성 악화로 나타나는 것은 뻔한 일이다. 인위적으로 가격을 누르면 비용은 어디엔가로 숨어들게 되고 결국에는 국민들의 세금 고지서로 날아오게 된다. 세상사에 공짜는 없다. 조삼모사(朝三暮四)하는 원숭이도 아닌 것을 앞에서는 가격을 누르고 뒤에서는 세금을 걷어 메운다면 이는 국민을 기만하는 것이요, 수익자 비용부담 원칙에도 어긋난다.

애당초 국제유가가 사상최고 수준으로 치닫는 상황에서 국내 기름값을 억지로 내리자는 것이 합당한지부터가 의문이었다. 에너지 과소비 체질을 고치지 않는 한 밑빠진 독에 물붓기라는 것을 인정하는 선에서 에너지대책을 세우는 것이 정부가 할 수 있는 유일하고도 합당한 조치다. 또 충분히 비싼 기름값이라야 에너지 구조조정이 촉진되고 대체에너지가 개발되는 등의 부수적인 효과가 가능하다는 점도 이명박 정부는 철저하게 무시했다. 기름값을 억지로 낮춰 에너지 소비를 현 수준에서 유지하도록 만드는 것은 전형적인 표퓰리즘이다. 시도 때도 없이 목소리를 높이는 소위 좌파 환경단체들이 기름값 내리라는 주장을 내놓는 것도 한국에만 있는 기이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