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 일자리를 만들기 위한 변호사 단체의 노력이 눈물겹다. 생뚱맞은 '준법지원인제'를 만들어 내더니 전국 경찰서 248곳에 변호사를 특채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전국 시 · 군 · 구 228곳에 변호사를 두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는 얘기도 들린다.

변호사 단체가 일자리 만들기에 필사적으로 나서는 이유는 간단하다. 새로 쏟아져 나오는 변호사가 현재 1000여명(사법연수원 수료생)에서 내년부터 2500여명(로스쿨 졸업생 1500여명 포함)으로 불어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변호사 몸값은 떨어지는 추세다. 일부 기업은 고작 '대리급'으로 변호사를 채용하고 있다. 경찰청도 현재의 경정(5급 · 사무관급)보다 한 계급 낮은 경감으로 고시 합격생을 특채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변호사 단체가 얻은 가시적 성과물은 준법지원인제를 도입토록 한 상법개정안의 통과다. 일정 규모 이상의 상장회사는 변호사나 법학 교수를 의무적으로 채용해야 한다는 게 골자다. 여론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12일 국무회의에서 법안을 공포키로 했으니 변호사들로선 쾌재를 부를 만하다.

이들은 준법지원인제가 변호사 일자리 만들기 차원이 아니라고 강변한다. 오히려 법률적 지원을 상시화함으로써 회사와 투자자를 보호할 수 있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하지만 아니다. 상장회사들은 공정공시 등 각종 규정에 따라 이미 이중삼중의 감시를 받고 있다. 자기 돈을 투자한 투자자들도 눈을 부라리고 이들을 감시하고 있다. 변호사가 없어도 충분히 내부통제를 할 수 있다.

정작 준법지원인이 필요한 곳은 다른 데 있다. 청와대와 정부,국회가 그곳이다. 이곳엔 내로라하는 대한민국의 엘리트들이 모여 있다. 하지만 하는 일은 전혀 엘리트답지 않다. 청와대만 해도 그렇다. 세종시 문제로 한바탕 난리를 치더니만 동남권 신공항,과학비즈니스벨트,LH(한국토지주택공사) 이전 등을 둘러싸고 논란을 자초하고 있다. 딱 부러진 결론없이 여기저기 눈치만 보다가 갈등과 논란을 확대 재생산하고 있다. 온갖 공기업과 금융회사 인사에 개입해 '감놔라 배놔라'하는 행태는 더 이상 언급할 필요도 없다.

정부도 마찬가지다. 구제역 파동,전세대란,'묘한 기름값'논란 등이 터질 때마다 허둥대기 일쑤다. 한 · 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 협정문을 207곳이나 잘못 번역해 망신을 초래한 것도 정부다. 국회는 말할 것도 없다. 벌금형에 따른 당선무효 규정을 개악한 공직선거법 개정안,이익단체의 후원금을 쉽게 받을 수 있도록 한 정치자금법 개정안 등 내놓는 법안마다 오로지 자신들만을 위한 것이다. 2년 전부터 논란이 됐던 준법지원인제를 상법 개정안에 은근슬쩍 끼워넣어 통과시킨 것도 다름아닌 법조인들이 많은 국회다.

이들에게 준법지원인이 무슨 필요가 있느냐고? 맞다. 이미 로펌과 변호사,보좌관들로부터 충분한 도움을 받고 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준법지원인 대신 '국정지원인'은 어떨까. 각종 국책사업이나 현안,입법활동이 과연 국익과 민심에 부합하는지를 판단하고 여론을 가감없이 전달하는 그런 사람 말이다. 그러자면 변호사만으론 안된다. 양식과 경륜,시장경제에 대한 철학을 가진 사람이어야 한다. 이들에게 상당한 발언권을 주고 이들의 의견을 공표토록 한다면 터무니없는 제도가 도입되는 걸 막을 수 있지 않을까. 일자리 한 개가 급한 변호사 단체에는 대단히 미안한 얘기지만 말이다.

하영춘 증권부장 ha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