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만약 아내 말을 안 들었다면 지금 땅을 치고 후회하고 있을 것입니다. "

중견기업 부장으로 맞벌이를 하는 결혼 22년차 김모씨(48)는 부동산 투자 얘기가 나올 때마다 아내 결정에 따르기를 잘했다는 생각을 한다. 결혼 후 첫 집을 장만할 때의 일이다. 자라온 환경이 다른 김씨와 아내의 의견이 대립했다. 경기도 시골 출신인 김씨는 고향집에 가기 편한 강북을,부인은 지하철 도로 등 교통 인프라가 좋은 잠실을 고집했다. 몇 번을 다툰 끝에 아내의 말대로 잠실지역 집을 샀다. 당시 비슷했던 두 지역 집값(강북 옛 27평형 8700만원,잠실 19평형 9000만원)은 5년 후 세 배 이상 벌어졌다. 이후 김씨는 "집 살 땐 무조건 여자가 하자는 대로 하라"고 주변 사람들에게 조언한다.

흔히 부동산 투자에는 여자가 강하다고 한다. 이를 입증할 만한 통계는 물론 없다. 하지만 여성의 투자 감각이 더 뛰어나다는 주장에 웬만한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인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여성이 남성에 비해 감성적이란 점이 이런 차이를 만든다고 진단한다. 흔히 '부동산엔 전문가가 없다'고 말한다. 그만큼 예측하기가 쉽지 않은 분야라는 얘기다. 예측이 어려운 만큼 감각이 중요하다. 감성이 발달한 여자들은 오르겠다 싶으면 바로 행동으로 옮긴다. 안명숙 우리은행 부동산팀장도 "부동산은 전체를 계량화하기가 쉽지 않은 시장"이라며 "그런 점에서 대체적으로 과감한 여성들이 유리한 점이 있어 보인다"고 분석했다. 박상언 유엔알컨설팅 대표도 "부동산은 분석을 통해 정확히 예측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니다"며 "이성적으로 봤을 때 80% 정도 괜찮다는 판단이 서면 나머지 20%는 감으로 행동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반면 남자들은 100% 확신이 설 때까지 분석하려다가 매수 적기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는 지적이다. 부동산 컨설팅업체인 나비에셋의 곽창석 대표는 "부동산 상담을 할 때 여자들은 혼자 찾아와서도 결단을 내리는 경우가 많지만 남자들은 결정을 못해 결국 다음에 아내와 함께 다시 찾곤 한다"고 전했다.

여성이 남성보다 밑바닥 흐름에 밝다는 것도 장점으로 작용한다. 고준석 신한은행 갤러리아팰리스 지점장은 "부동산 값은 전체적으로 오르기보다는 지역적 · 개별적으로 상승하는 개별성을 갖고 있다"며 "여성들은 지역 모임에서 속을 터놓고 고급 정보를 공유하는 경향이 있어 지역 부동산 시장 흐름을 잘 안다"고 분석했다.

이런 이유 때문에 부동산업계에서는 여성의 활약이 눈부시다. 부동산 시장의 최일선에서 뛰는 공인중개사 숫자만 봐도 그렇다. 매년 시행하는 공인중개사 시험에서 남녀 최종 합격률은 반반 정도다. 2008년에는 여성 합격자가 더 많았다. 20~40대의 젊은 공인중개사 숫자도 여성이 1만9996명으로 남성 1만5834명을 앞서고 있다.

부동산정보 제공업계에서도 김희선 부동산114 전무,강은 지지옥션 팀장 등 여성들이 맹활약하고 있다. 중견 건설업체를 운영하는 CEO(조영숙 동보주택 대표,강현정 울트라건설 사장)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오피스 시장과 자산관리업계에도 김우희 저스트알 상무 등 여성 진출이 본격화하고 있다. 건설사나 시행업체에서 평면 설계,마케팅 등을 책임지고 있는 여성도 많다.

박한신 기자 hansh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