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정악장 빌제께서는 여름 시즌에 폴란드 바르샤바로 원정 공연을 떠날 계획이지만 우리 단원에게는 최소한의 생계조차 꾸릴 수 없는 조건을 제시했다. "

대표적인 음악당조차 존재하지 않았던 시기인 1882년의 베를린.궁정악장 벤야민 빌제의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자신들의 탈퇴 이유를 신문에 실으며 '항명 파문'을 일으켰다. 빌제가 바르샤바 여름 원정 공연을 계획하면서 공연료를 낮게 책정했기 때문이었다. 정해진 공연료로는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물가가 비싼 바르샤바에서의 체재비를 감당할 수 없었다.

몇 차례의 중재 노력이 이어졌지만 격분한 빌제와 단원들 간의 간극은 좁혀지지 않았다. 결국 54명의 단원들은 빌제의 오케스트라를 떠났다. 하지만 그들은 독립된 오케스트라로 우수한 연주를 선보였고 결국 '베를린 필하모니 오케스트라'로 정착하는 데 성공한다.

《베를린 필하모니 오케스트라》의 저자는 세계 정상급 오케스트라로 자리잡은 베를린 필하모니 탄생 과정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일대기를 수석 지휘자들을 중심으로 살펴본다. 초대 상임 지휘자인 한스 폰 뷜로를 시작으로 절제되고 부드러운 지휘 방식으로 청중을 사로잡았던 아르투어 니키슈,화려함과 고도의 정밀함을 추구하는 지휘자였던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음악을 인간의 기본적 욕구이자 삶에 활력을 주는 필수요소로 생각하는 현 수석 지휘자 사이먼 래틀에 이르기까지 개성 있는 지휘자들의 면면이 흥미롭다.

박민제 기자 pmj5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