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 29일 국내 4개 정유사에 주유소 '원적지 관리'와 관련한 담합 심사보고서를 발송한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1월 각 정유사를 전격 방문,주유소 영업과 관련한 자료를 가져간 지 2개월여 만이다. 분량은 옛 전화번호부책 두께인 2000쪽에 이른다. 지난해 역대 최대인 6689억원의 과징금이 부과된 액화석유가스(LPG) 업계 담합에 대한 심사보고서는 162쪽이었다. 일각에선 이명박 대통령이 "기름값이 묘하다"고 언급한 뒤 유가 인하방안을 협의해온 태스크포스(TF)가 뚜렷한 결론을 내리지 못하자 정부가 과징금 카드를 빼들었다는 관측이 나온다.

◆과징금 1조원대 웃돌 듯

정유 4사가 관련된 이번 담합건에 대한 과징금 규모는 1조원을 크게 웃돌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대상 범위와 기간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지만 많은 주유소가 관련된 문제라 과거 과징금 규모와는 비교조차 힘들 것이란 시각이 많다. 업계에선 1990년대 초 정유사들 간 치열하게 벌어졌던 이른바 '폴 전쟁' 이후로 따지면 해당 기간이 15년 이상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흔히 담합이라고 부르는 부당 공동행위에 대한 과징금은 해당 행위에 따른 매출의 5~10%다. SK에너지(현 SK이노베이션)의 2009년 정유 부문 내수 매출은 24조원,주유소 시장점유율은 35%인 것을 고려하면 국내 주유소 시장의 매출 총액은 50조원이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공정위가 담합 혐의를 두고 있는 내용은 주유소가 정유사 폴을 바꾸려고 할 때 해당 정유사가 기존 거래 정유사로부터 동의서를 받아오라고 요구해 사실상 이동을 막는 행위 등이다. 이미 2008년 말 공정위로부터 시정 명령을 받았던 사안이다.

◆일부 업체 리니언시했을 것

정부가 유가TF에서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하자 공정위를 앞세워 정유사를 압박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이에 대해 공정위 관계자는 "불공정 거래 행위에서 담합을 포착한 첫 사례로 충분한 자료를 확보했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일부에선 LPG 담합 건에서 상대적 피해를 본 GS칼텍스에서 자진신고자 감면제(리니언시)를 활용,상당량의 자료를 넘겼다는 소문도 흘러나온다. 지난해엔 SK에너지가 가장 먼저 신고해 과징금 1602억원을 100% 감면받았고,두 번째였던 SK가스는 1987억원의 50%가 감액됐다.

심사보고서를 받아든 정유업계는 대책 마련에 비상이 걸렸다. 정유 4사는 30일 심사 결과에 대한 회의를 거듭하며 법무법인 등과 향후 대책을 논의했다. 정유사 관계자는 "분량이 워낙 방대해 이를 분석하는 데만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 원적지 관리

정유사가 매출이 높거나 상징적인 지역에 있는 다른 회사 폴(간판)의 주유소를 자기 회사로 옮겨오기 위해,또는 뺏기지 않기 위해 특혜를 주는 행위 등을 뜻한다. 원적지는 정유사 폴이 없는 자가폴 주유소나 폴이 자주 바뀌는 주유소들이 개소시 계약했던 정유사를 뜻하는 업계 용어다.


조재희/이정호 기자 joyja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