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볕에 물든 완숙한 詩의 맛…풍경을 깨우다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김광규ㆍ이재무 씨 시집 동시 출간
완숙한 시는 간결하면서도 오랜 여운을 남긴다. 시인에게 자연은 관찰의 대상이 아니라 자아의 내면이기도 하다. 풍경과 일상,사람과 장소,과거에 대한 기억도 시어를 통해 생생히 살아난다.
김광규 시인(70)의 열 번째 시집 《하루 또 하루》와 이재무 시인(53)의 아홉 번째 시집 《경쾌한 유랑》이 문학과지성사에서 나란히 출간됐다. 등단 36년째인 김광규 시인은 얼핏 보기엔 쉬운 듯한 77편의 시를 통해 현실을 비판하고 또 껴안는다.
'앞발로 전신주를 감싸 안고/ 뒷발로 아래쪽을 밀면서/ 기둥을 기어올라가는/ …손은 하얗고 몸뚱이는 까만' 주인공은 뇌졸중으로 갑자기 쓰러질지 모를 '검은 작업복에 흰 장갑을 낀 전기공'('호모 에렉투스' 부분)이다. '사랑놀이만 발키고 아무도/ 애를 낳지 않는 시대에 귀여운/ 아기 엄마가 되어버린 소녀'('이른모에게')와 '주상복합 고층 아파트 입주자들이/ 통로를 막고/ 길에 철조망을' 쳐 오도가도 못하게 된 '소형 임대 아파트 주민들'('나뉨')도 모두 우리의 이웃이다.
'인천공항을 떠나 프랑크푸르트까지/ 12시간을 날아가는 에어버스/ 젊은 백인 부부가 데리고 가는/ 머리카락 까만' 입양아,동남아 관광지에서 '원 달러… 보트피플과/ 관광객들 사이의 유일한 통용어'를 외치는 선상 난민 가족,'포클레인이 하루에 50만원을 벌고/ 인부들은 일당 4,5만원을 받는'('굴삭기의 힘') 현실도 애잔하게 그렸다.
자연과 사물을 정교하게 묘사하는 이재무 시인은 이번에도 실존적 자기 탐색과 반성의 길을 일깨운다. 깊은 밤 '베란다 밖… 어울리지 않게 우람한 덩치를 크게 흔들어대며 울고' 있던 오동나무('말 없는 나무의 말')와 '맹렬한 적개심으로 존재를 불태웠던/ 질풍노도의 서슬 퍼런 날들이 가고/ …저마다 각자 장단 완급의,고요한/ 풍화의 시간 살고' 있는('돌로 돌아간 돌들') 돌은 바로 시인 자신이다.
저녁 산책길 '벌써 홑이불 되어 고랑 덮어오는 산그늘'('저녁 산책')과 '올가을 풀벌레 울음/ 말가웃쯤 따 모았다가/유기농 화장품이나 만들어볼까'('올가을 화장품이나 만들어볼까') 등 자연의 아름다움을 일깨우는 시구들도 읽는 재미를 배가시킨다.
이들이 아내를 등장시킨 작품도 흥미롭다. 3남4녀 중 막내아들인 김 시인은 '잔소리하는 노처의 얼굴 쳐다보니/ …마누라가 늙으면 누나가 되는구나'('다섯째 누나')라며 정겨워한다. 이 시인은 '열심히 사는 것과 안달하는 것은 다르다. 안달을 배웅하고 난 뒤 자연에 자주 마중 나가는 아내의 몸에서 산더덕 내가 훅,끼쳐왔다'('백둔정방 요양원에서')고 고백한다.
문혜정 기자 selenmoon@hankyung.com
김광규 시인(70)의 열 번째 시집 《하루 또 하루》와 이재무 시인(53)의 아홉 번째 시집 《경쾌한 유랑》이 문학과지성사에서 나란히 출간됐다. 등단 36년째인 김광규 시인은 얼핏 보기엔 쉬운 듯한 77편의 시를 통해 현실을 비판하고 또 껴안는다.
'앞발로 전신주를 감싸 안고/ 뒷발로 아래쪽을 밀면서/ 기둥을 기어올라가는/ …손은 하얗고 몸뚱이는 까만' 주인공은 뇌졸중으로 갑자기 쓰러질지 모를 '검은 작업복에 흰 장갑을 낀 전기공'('호모 에렉투스' 부분)이다. '사랑놀이만 발키고 아무도/ 애를 낳지 않는 시대에 귀여운/ 아기 엄마가 되어버린 소녀'('이른모에게')와 '주상복합 고층 아파트 입주자들이/ 통로를 막고/ 길에 철조망을' 쳐 오도가도 못하게 된 '소형 임대 아파트 주민들'('나뉨')도 모두 우리의 이웃이다.
'인천공항을 떠나 프랑크푸르트까지/ 12시간을 날아가는 에어버스/ 젊은 백인 부부가 데리고 가는/ 머리카락 까만' 입양아,동남아 관광지에서 '원 달러… 보트피플과/ 관광객들 사이의 유일한 통용어'를 외치는 선상 난민 가족,'포클레인이 하루에 50만원을 벌고/ 인부들은 일당 4,5만원을 받는'('굴삭기의 힘') 현실도 애잔하게 그렸다.
자연과 사물을 정교하게 묘사하는 이재무 시인은 이번에도 실존적 자기 탐색과 반성의 길을 일깨운다. 깊은 밤 '베란다 밖… 어울리지 않게 우람한 덩치를 크게 흔들어대며 울고' 있던 오동나무('말 없는 나무의 말')와 '맹렬한 적개심으로 존재를 불태웠던/ 질풍노도의 서슬 퍼런 날들이 가고/ …저마다 각자 장단 완급의,고요한/ 풍화의 시간 살고' 있는('돌로 돌아간 돌들') 돌은 바로 시인 자신이다.
저녁 산책길 '벌써 홑이불 되어 고랑 덮어오는 산그늘'('저녁 산책')과 '올가을 풀벌레 울음/ 말가웃쯤 따 모았다가/유기농 화장품이나 만들어볼까'('올가을 화장품이나 만들어볼까') 등 자연의 아름다움을 일깨우는 시구들도 읽는 재미를 배가시킨다.
이들이 아내를 등장시킨 작품도 흥미롭다. 3남4녀 중 막내아들인 김 시인은 '잔소리하는 노처의 얼굴 쳐다보니/ …마누라가 늙으면 누나가 되는구나'('다섯째 누나')라며 정겨워한다. 이 시인은 '열심히 사는 것과 안달하는 것은 다르다. 안달을 배웅하고 난 뒤 자연에 자주 마중 나가는 아내의 몸에서 산더덕 내가 훅,끼쳐왔다'('백둔정방 요양원에서')고 고백한다.
문혜정 기자 selenm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