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서울 한복판에서 끔찍한 살인 사건이 일어났다. 살인자와 피살자는 서로 형님 아우 하는 사이였는데 결국 돈 2000만원 때문에 소중한 생명이 사그러졌다. 살인자는 죽은 사람에게는 빌린 돈을 갚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서 둘도 없는 죽마고우에게 둔기를 휘둘렀다.

그런데 텔레비전을 통해 이 사건 관련 보도를 보면서 어이가 없었다. 경찰이 현장검증 과정에서 혹시라도 범인의 얼굴이 노출될 것을 우려해서인지 마스크와 모자를 씌우고,그것도 모자라 큰 수건을 둘둘 말아 얼굴을 가려 주는 것이었다. 도대체 왜들 이러나. 범인이 이미 자신의 범죄 행위를 자백한 상황인데도 살인마를 이렇게까지 보호해야 하는 이유가 뭔지 이해하기 어렵다.

시민들은 살인자에 대해 알 권리가 있다. 살인자가 어떻게 생겼는지,그리고 이름과 배경 등을 알아야 비슷한 사건으로부터 자신과 가족을 보호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의 살인 사건 보도와 관련해 또 한 가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은 죽은 사람에 대해서는 거의 알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억울한 희생자에 대해선 얼굴은커녕 가족의 상태에 대해서도 일언반구 전하지 않는다. 끔찍한 사건으로 뼈저린 슬픔을 안고 살아가야 하는데도 말이다. 그렇다면 희생자의 인권은 도대체 누가 보호하나. 그 가족의 슬픔이 말이 아닐 텐데 이에 대해 무관심하고 오직 살인자만 쫓아 다니며 그의 인권을 애써 존중하려는 행태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

미국이나 한국이나 범죄 혐의를 받는 사람에 대한 보호 규정은 마찬가지다. 미국은 법원에서 유죄판결을 받을 때까지는 누구나 무죄로 추정되며,법의 보호를 받는다는 법 조항이 있다. 대한민국 역시 헌법 2장 17조에서 "모든 국민은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받지 않는다" 는 소위 사생활의 권리가 명백히 규정돼 있다. 그렇다고 이것 때문에 살인자의 얼굴을 가려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과잉해석이다.

미국에선 살인자와 희생자의 사진을 나란히 보여주고,범죄자에 대한 형이 확정되지 않은 상황이거나 본인이 완강히 범죄를 부인할 경우는 '범죄 용의자' 로 모습을 노출시킬 수 있다. 특히 미성년자 성폭행 범죄자들의 경우 형을 마치고 출감해도 국민들은 결코 용서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들의 사진을 동네 곳곳에 붙여놓고 주민들의 경각심을 일깨운다. 그러니 이런 범죄자들은 어쩔 수 없이 보따리를 싸고 아무도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외딴 곳에서 평생을 숨어 지낸다.

한국도 앞으로는 범인의 신상 공개와 관련해 좀더 적극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법원에서 유죄판결을 받기까지는 십 수 개월이 걸리는데 그 때는 이미 국민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고 그 사이에 다른 새로운 범죄가 발생하는 것은 불문가지다. 그렇게 볼 때 주민들은 결국 살인마의 얼굴을 영영 볼 수 없게 되고,희생자가 누구인지도 알지 못하게 된다. 과연 이것이 인권을 보호하는 것인가. 하루빨리 범죄자들에게서 모자와 마스크를 벗기고,국민들에게 범죄자의 모든 것을 적나라하게 공개해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인권 보호이자 민주주의다.

김창준 < 전 미국 연방하원의원 · 한국경제신문 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