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바람 태양….'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넘는 고유가 시대가 찾아오면서 신재생에너지 사업에 대한 국내 대기업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삼성,현대 · 기아자동차,LG,SK 등 4대 그룹은 물론 중견 기업들까지 그린 사업에 출사표를 던지거나 신재생에너지 사업과 기존 사업을 접목시키는 데 주력하고 있다.

기업들에 신재생에너지 사업은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 조건으로 자리잡고 있다. 석유를 정제해 휘발유를 만들어 팔던 정유사들이 전기를 연료로 쓰는 자동차용 2차전지 개발에 나서고,배를 만들어 팔던 조선사들이 풍력발전 사업에 뛰어드는 등 기업들의 변신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그린 오션(green ocean)' 시장을 선점하고 미래 든든한 캐시카우를 만들겠다는 사업 전략이다.

◆4대 그룹 'green'이 미래 먹을거리

4대 그룹을 중심으로 한 신재생에너지 사업이 눈길을 끈다. 전기차용 2차전지 및 소재,풍력발전,태양광 등 대표적인 신재생에너지 분야에서 신(新) 경쟁 구도가 형성되고 있다. 삼성그룹은 2020년까지 태양전지,자동차용 2차전지,발광다이오드(LED) 등 5대 미래 사업에 총 23조3000억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자동차용 2차전지 부문을 담당하고 있는 삼성SDI는 글로벌 시장에서 잇따라 대규모 수주를 성사시키며 사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현대 · 기아차는 친환경차를 미래 성장동력으로 삼기 위해 대대적인 투자에 나서고 있다. 2013년까지 친환경차 개발 부문에만 총 4조1000억여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LG는 작년 4월 구본무 회장 등 그룹 최고경영진이 참석한 사장단협의회를 열고 그린경영 로드맵인 'Green 2020' 전략을 확정했다. 2020년까지 총 20조원을 투자해 △그린 사업장 조성 △그린 신제품 확대 △그린 신사업 강화 등 3대 과제를 추진해 나간다는 것이 골자다. 이를 통해 2020년 연간 5000만t의 온실가스를 감축한다는 목표도 세웠다.

SK는 2000년대 들어서 '석유 이후'의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해 '저탄소 녹색 성장'에 주목하고 관련 분야 R&D에 지속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신 에너지자원 확보(Energy) △스마트 환경 구축(Environment) △산업혁신기술 개발(Enabler) 등을 3대 핵심 신규 사업 분야로 정하고,2020년까지 모두 17조5000억원을 투자할 예정이다.

◆위상 높아지는 한국 그린사업

다양한 신재생에너지 분야에서 국내 기업들의 위상도 높아지고 있다. OCI는 태양전지 핵심 소재인 폴리실리콘 사업에서 세계 1위를 눈앞에 두고 있다. 사업 진출 5년 만이다. 공격적인 투자를 통해 2012년 말이면 폴리실리콘 생산량이 연간 6만2000t으로 늘어나 세계 1위 자리를 놓고 증설 경쟁을 벌이고 있는 미국 헴록을 1만6000t 차이로 따돌리고 선두 업체로 올라선다.

한화는 폴리실리콘 생산부터 태양전지 모듈에 이르기까지 수직 계열화 구축 작업을 진행 중이다. 주력 계열사인 한화케미칼의 태양광 사업은 진출을 선언한 지 3년에 불과하지만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고 있다. 작년 1월 태양전지(셀) 상업 생산을 시작한 데 이어 8월엔 세계 4위인 중국의 솔라펀파워홀딩스를 인수해 '한화솔라원'으로 사명을 바꿨다. 한화솔라원은 잉곳 웨이퍼 태양전지 모듈에 이르기까지 태양광 발전기 제조업에서 수직 통합 체계를 갖추고 있다.

신재생에너지 전문 사업본부를 신설한 현대중공업은 태양광과 풍력 사업에서 앞서 나가고 있다. 현재 현대중공업의 태양광 모듈,태양전지 생산 규모는 국내 1위다. 올 2분기에는 모듈과 태양전지 연간 생산 규모를 각각 600㎿(20만가구 사용분) 체제로 구축할 예정이다. 2009년 2월 군산에 국내 최대 규모의 풍력 공장을 완공,이곳에서 1.65㎿급 풍력발전기를 생산하고 있다.

◆'묻지마 투자'는 금물

대기업들이 앞다퉈 신재생에너지 사업에 진출하면서 시장이 커지고 있지만 풀어야 할 숙제도 많다. 해외 의존도가 높은 원천기술을 확보하는 것이 우선 과제다. 산업연구원이 작년 8월 국내 태양광 · 풍력 · 연료전지 설비업체 330곳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선진국에서 보편화한 기술을 쓴다'고 답한 기업이 74.3%에 달했다. 원천기술 개발이 절실하다는 방증이다. 업계 관계자는 "신재생에너지 설비에 들어가는 부품이나 기술의 해외 의존도가 높아지면 그린 사업 자체가 속빈 강정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묻지마 투자'도 금물이다. '다른 기업이 하니까','유망한 사업이라고 하니까' 식의 사업 진출과 투자 결정은 성과는 물론 기존 사업에도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정호 기자 dolp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