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은 인류의 문명사를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발전시켜왔다. 제2차 세계대전에 종지부를 찍은 원자폭탄은 당시 과학기술력을 압축한 산물이다. 전후엔 항공우주산업이 세계 각국의 명운을 갈랐다. 항공우주산업이 과학기술 분야에서 뉴 패러다임을 구축한 결과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연초에 "미국은 현재 '스푸트니크 모멘트'에 와 있다"고 말했다. 스푸트니크는 2차대전 후 옛 소련이 미국보다 앞서 우주로 쏘아올린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이다. 옛 소련이 미국에 선방한 스푸트니크는 양국 간 첨단 과학기술 경쟁을 촉발시켰고,그 결과인 위성항법장치(GPS) 시스템 등은 인류의 삶을 근본적으로 바꿔놨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TDX(전전자교환기) 국산화에서 CDMA(부호분할다중접속) 세계 최초 상용화,최근 4세대 통신기술인 LTE(롱텀에볼루션) 개발에 이르기까지 통신산업 한 분야만 봐도 과학기술과 산업 발전이 사회 · 문화 · 정치의 틀을 완전히 재편하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과학기술의 수준은 어느 정도일까. 화려한 외형과 달리 앞으로 풀어야 할 숙제가 너무 많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원천기술 확보 시급

국내 과학기술 구조의 문제점은 기술수지에서 잘 드러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산출한 주요 과학기술지표에 따르면 2008년 기준 우리나라의 기술수지(기술수출액 25억3000만달러/기술도입액 56억7000만달러)는 0.45로 기술수지 산출이 가능한 OECD 회원국 20개국 가운데 꼴찌다. 판 기술이 산 기술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뜻이다.

반면 쏟아붓는 돈은 경제 규모에 비춰볼 때 세계 최고 수준이다. 2009년 민간기업과 공공분야를 포함한 총 연구 · 개발비는 37조9285억원.국내총생산(GDP) 대비 비중은 3.57%로 이스라엘 핀란드 스웨덴에 이어 세계 4위,OECD 회원국 가운데 3위를 기록했다. 또 전년 대비 평균 연구 · 개발비 증가율은 8.3%로 OECD 국가 평균 5.9%를 웃돌며 OECD 국가 중 중국(18.5%)에 이어 두 번째로 높다.

◆논문 쏟아지지만 질은 별로

우리나라의 과학기술 논문 역시 양은 세계 수위권이다. 최근 발간된 교육과학기술부 과학기술논문 인용색인(SCI)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2009년 우리나라의 SCI급 논문 발표 수는 3만8651건으로 세계 11위다. 전년 대비 증가율은 8.65%로 논문 수 상위 30위권 국가 중 세 번째다. 그러나 질적인 면에서는 얘기가 달라진다.

2009년 기준 상근 연구원 1인당 논문 수는 0.16편에 불과하다. 논문 1편당 평균 피인용횟수는 0.35회로 세계 평균(0.48) 수준에도 못 미친다. 최근 10년(2000~2009년)간 발표된 총 논문 24만8069편 가운데 1회 이상 피인용된 논문은 67.7%인 16만796건으로 역시 세계 평균인 73.14%에 못 미친다.

◆불균형 심각…구조개혁 절실

기업별 · 산업별 투자 불균형도 심각하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에 따르면 상장기업 가운데 매출 상위 30대 기업의 연구 · 개발비 비중은 전체 상장기업 투자액의 75%에 달하고 이들과 여타 기업 간 R&D 투자 총액 격차는 2007년 7조7000억원에서 2008년 9조2000억원,2009년 10조2000억원으로 갈수록 커지고 있다.

R&D 결과물의 질도,평가방식도 문제다. 특허청 조사에 따르면 국가 R&D로 창출한 특허 가운데 '우수특허'의 비율은 민간에 비해 절반,주한 외국인 우수특허 비율의 6분의 1에 불과하다. 국내 공공 R&D 성과의 당해연도 이전율은 12.8%로 미국 대학과 공공연구원의 3분의 2 수준이며 기술이전료는 건당 1220만원으로 미국 대학과 공공연구원의 80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스트롱코리아 시즌1

한국경제신문은 2002년 '스트롱코리아' 캠페인을 처음 벌였다. 당시 '가자! 과학기술 강국으로'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벌인 캠페인은 각계의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2004년 '국가과학기술경쟁력강화를 위한 이공계특별법'이 제정되는 토양을 제공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당시 교육인적자원부 과학기술부 등 각 부처를 비롯해 전경련 등 경제 5단체,각종 과학과련 유관단체가 힘을 보탰다.

그러나 '스트롱코리아 시즌1' 캠페인을 벌인 지 9년이 지난 지금도 이공계 기피현상은 해소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는 평가다. 한경이 각계와 손잡고 2002년 벌였던 스트롱코리아의 '시즌2'격인 '스트롱코리아 2011'을 다시 시작하는 이유다.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