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실종자 1만명 '훌쩍'..물에 잠기고 불에 탄 마을
원전 공포에 갑작스런 추위까지..계속되는 고통


그저 평소와 다른 없이 평온했던 11일 오후 2시46분, 일본 도호쿠(東北) 지방 앞바다에서 발생한 초대형 지진은 일주일만에 일본 열도의 반쪽을 슬픔과 암흑으로 덮었다.

도시는 불에 탔고 해안가의 마을은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폐허로 뒤바뀌었다.

뒤이어 대형 쓰나미가 바닷가 대도시인 센다이(仙台) 일부까지 덮쳤다.

바닷물이 둑을 넘어 농경지와 도로, 가옥을 덮쳤고 차량들은 마치 장난감처럼 둥둥 떠다녔다.

여진이 계속되고 곳곳이 쓰나미로 신음하며 한동안 피해상황을 파악하기도 쉽지 않았지만 대지를 뒤덮었던 쓰나미가 슬슬 빠져나가면서 해안가에는 시신이 하나둘씩 밀려들기 시작했다.

강진과 쓰나미의 고통은 죽은 자만의 것은 아니었다.

사랑하는 이를 잃은 사람들은 오열을 멈추지 못했고 집을 잃은 사람들은 대피소에서 추위와 싸우며 밤을 지새워야 했다.

여기에 원전 사고 위험까지 겹치며 두려움이 주는 불안의 고통은 일본 열도 전체로 퍼져 나가고 있다.

◇사라진 1만2천명..처참한 현장 = 강진과 쓰나미가 휩쓸고 간 현장은 처참함 그 자체였다.

강진 직후 불이 난 미야기(宮城)현 게센누마(氣仙沼)시는 다음날까지 불에 타더니 결국 도시 전체가 잿더미가 됐고 쓰나미의 직격탄을 맞은 같은 현 센다이시 와카바야시(若林)구 해안인 아라하마(荒浜)에서는 200∼300명의 익사체가 한꺼번에 발견되기도 했다.

집과 가족을 잃은 사람들은 학교 건물 등에 마련된 대피소에 피해 슬픔과 추위를 함께 맞닥뜨려야 했다.

망연자실하며 눈물을 흘리는 이재민들의 슬픔은 전파를 타고 일본 전역과 인접국 한국을 비롯해 세계로 퍼져 나갔다.

연합뉴스 취재진이 13일 찾은 미야기(宮城)현 나토리(名取)시의 유리아게(門밑에水+上)는 쓰나미로 가옥과 차량이 쓸려나간 자리에 각종 쓰레기만 가득 차 있었다.

차 위에 차가 올라가 있기도 했고 뒤집힌 건물과 고기잡이 배가 한데 섞여 있었다.

이와테(岩手)현의 항구도시 오후나토(大船渡) 역시 처참한 몰골이었다.

바닷물은 교각의 철제 난간을 휘어진 엿가락처럼 만들어버렸고 건물은 온전한 것을 찾기 어려울 정도였다.

해일에 휩쓸린 자동차 수십 대는 종잇장처럼 구겨져 뒤집히거나 건물 옥상 또는 둑 위 등 제자리가 아닌 곳에 처박혔다.

아이테(岩手)현의 항구도시 리쿠젠타카타(陸前高田)시 역시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철저하게 파괴됐다.

지역 하천인 게센(氣仙)천을 따라 걷는 동안 보이는 것은 부서진 건물 잔해와 어지럽게 널린 가재도구뿐이었다.

다리는 교각만 남아 있었으며 철제 상판은 종잇장처럼 구겨져 하천에 처박혀 있었다.

높이 10m의 쓰나미에 휩쓸린 지역 최대 도시 센다이시 역시 한때 도시 전체가 마비되다시피 했다.

쓰나미는 해안 지역의 가옥과 이동 중인 차량을 덮쳤으며 공항은 침수됐다.

시외버스 정류소와 식료품 가게에는 피신하거나 식료품을 구하려는 시민들의 줄이 1㎞를 넘어서기도 했다.

당국은 16일까지 4천255명이 사망한 것으로 집계하고 있으며 행방불명된 사람까지 포함하면 사망ㆍ실종자 수는 1만2천449명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쓰나미는 지나갔지만..고통와 불안은 계속 = 대지진과 쓰나미가 남긴 상처에다 후쿠시마 원전에서 대량의 방사능이 유출될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열도는 더욱 고통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취재진이 만난 일본인들은 하나같이 의연한 태도를 보이면서도 갑작스럽게 찾아온 초대형 재난을 바라보는 불안한 심정은 숨기지 않았다.

지진이 난 지 이틀 뒤 운항이 재개된 후쿠시마 국제공항은 도쿄나 오사카 등 방사능에 노출될 우려가 없는 곳으로 `탈출'하려는 주민 수백명으로 가득 찼다.

이 중 150여 명은 항공권 대기자 명단에도 이름을 올리지 못해 담요를 깔고 앉아 `노숙 생활'을 하고 있었다.

로비에 설치된 TV로 원전 3호기 폭발 장면을 지켜보던 가와자키(68)씨는 "정부에서 제공하는 정보는 너무 제한적이다.

나 같은 전후세대는 핵(核)에 대한 공포심이 젊은 세대보다 훨씬 클 수밖에 없다"며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쓰나미 직격탄을 맞은 해안 지역의 피난민들은 3월 중순치고는 이례적인 추위와 계속되는 눈발에 지쳐가고 있다.

대부분 마을마다 학교 강당 등에 마련된 대피소에서 생활하는 이들은 정부와 여러 민간단체의 구호품 덕분에 참사 2∼3일 뒤부터 식량 사정은 나아졌다.

그러나 갑작스럽게 찾아온 추위에는 속수무책이다.

지방정부 등에서 지급한 모포는 이미 참사로 허약해진 피난민의 몸을 한기로부터 보호하기에는 너무 얇아 보였다.

현재 8만여 명의 구조대가 최악의 환경에서 실종자 수색 작업을 벌이고 있지만 피해 지역이 너무 넓은데다가 기상조건상 시야 확보도 어려워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후쿠시마시에 사는 대리운전 기사 혼다(28)씨는 "지진에 대해서는 언제나 최악의 상황을 예상하고 철저히 대비해온 나라가 바로 일본이지만 이번에는 복구하는 데에 얼마나 많은 고통을 분담해야 할지도 상상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센다이연합뉴스) 김병규 안홍석 기자 bkkim@yna.co.krahs@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