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정보기술(IT)업체들의 주가가 신통치 못하다.

일본 대지진 이후 점유율 상승 등 반사이익 기대로 지난 14일 반짝 상승에 나섰지만 원자력 발전소 폭발 소식이 이어지면서 수요 약화 우려 등이 반영돼 다시 밀리고 있다.

17일 증시 전문가들은 일본 대지진으로 IT 중에서도 산업별로 차별화된 영향과 주가 흐름이 나타날 것으로 내다봤다. 가장 주목할 만한 산업으로는 반도체 가격 반등 시점이 앞당겨질 것으로 예상되는 반도체를 꼽았다.

단기적으로 부품 공급 차질 우려로 메모리 가격이 상승, 업황 반등에 힘이 실릴 것이라는 기대다. 특히 D램 메모리보다는 낸드플래시가 수요 부족에 따른 메모리 가격 반등 폭이 클 것이으로 전망되고 있다. 낸드플래시 공장의 위치가 D램 공장의 위치보다 진원지에 가까웠고 피해사례도 많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어서다.

이승우 신영증권 IT 팀장은 "반도체산업은 일본 강진에 따른 공급 감소 효과로 가격이 상승할 전망이고 국내 업체들의 일본 의존도가 대만업체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다"면서 "전 IT 산업 중 반도체가 가장 바람직해 보인다"고 조언했다.

김성인 키움증권 상무도 "반도체 산업 중 일본과 한국의 수출 경합도가 가장 높은 것은 낸드플래시 메모리"라면서 "일본 대지진과 전반적인 반도체 경기 확장에 따른 수급 호전 영향으로 이달 하반기와 다음달 D램 낸드플래시 메모리 가격은 상승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실제로 이달 상반월 32Gb(기가바이트) MLC(멀티레벨셀) 낸드플래시 고정거래가격은 5.66달러를 기록해 전월 말 대비 5.6% 급등했다.

디스플레이 산업의 경우 주요 일본 LCD(액정표시장치) 패널과 글라스 공장이 서남부 지역에 밀접해 있어 직접적인 타격은 미미하고, 반사이익도 크지 않을 수 있다는 진단이다. 한국 및 대만 패널 제조업체들은 유리 기판 및 디스플레이 관련 부품을 현지에서 대부분 조달해 부정적인 영향도 제한적일 것으로 예상했다.

다만 지진으로 일본 LCD 업체의 핵심소재 및 부품 수급에 차질이 빚어지면 공급이 줄어 패널 가격이 서서히 바닥권에서 탈출하는 모습을 나타낼 수 있을 것이란 관측이다.

황준호 대우증권 애널리스트는 "지진으로 세트와 유통 업체들이 LCD패널 재고 확보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면서 "각 채널에서 재고 확보에 나선다면 3월 하반월부터 패널 가격 반등이 가능할 전망"이라고 내다봤다.

가전산업은 국내업체들이 TV, 휴대폰, PC, 백색가전을 생산하는데 필수적인 부품들을 일본에서 수입하고 있지만 몇 가지 부품을 제외하면 대부분 국내 조달이 가능하기 때문에 큰 영향은 없을 것이란 관측이다. 그러나 일본 대지진이 경기에 미치는 충격 등은 가전 업황 수요에 다소 부담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TV와 PC 등 세트상품의 판매가 부진하면 부품, 장비업체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특히 LCD 장비업체들에는 신중한 접근이 요구된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김 상무는 "미국·유럽 시장의 포화상태, 일본정부의 보조금 지급 종료, 교체 수요 유발 동기 부재 등으로 올해 LCD TV 판매는 예상보다 매우 부진할 듯 하다"며 "일본지진 여파로 인한 반도체 가격의 급등으로 세트업체들의 단가 인하 요청이 거세질 전망이란 점도 부담요인"이라고 진단했다.

같은 논리로 LED(발광다이오드) 관련주들도 긍정적이지만은 않은 상황이다. 경기 불안으로 LED TV 판매가 부진해지면서 LED주들의 업황 반등 시점이 밀렸다는 평가다.

다만 일본업체가 강했던 렌즈와 광학필름 등 일부 기업들은 주문 증가에 따른 수혜를 입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일본 대지진으로 한국 업체들 역시 부품 공급에 차질이 진행될 가능성에 유의해야 한다는 의견도 힘을 받고 있다. 삼성전자LG전자가 SCM(공급망관리)를 강조하면서 부품 재고를 한달반 분 밖에 가지고 있지 않고 부품 업체들의 재고도 1개월분에 불과하기 때문이란 설명이다.

노근창 HMC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1995년 한신 대지진 때와는 달리 삼성전자와 LG전자의 휴대폰과 TV 시장 점유율이 급상승했다"며 "이들은 단 한 개의 부품 없이도 불가능한 조립 산업으로, 일본에서 핵심 소재와 원자재 수급에 어려움이 있을 경우 5월부터 부정적으로 작용, 한국 IT업체들의 2분기 실적 불확실성요인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한경닷컴 오정민 기자 bloom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