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만 과식하고 말았다. 아침에 고봉밥이라니…. '어부밥상' 때문이다. 매물도 주민들이 없이 살던 시절 먹던 것으로 차린 한상이라는데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화려하다. 잘 익힌 열기(불볼락)의 하얀 속살이 탱탱하다. 까시리와 참몰(모자반) 톳 같은 해초류 무침과 시금치 방풍나물 무침까지 웰빙 식탁의 전형이다. 빨갛게 익은 김치와 노릿노릿하게 구운 해물전도 입맛을 돋운다. 한 사발 가득한 성게미역국은 속을 확 풀어주고….

◆제철 해산물로 차린 상

두 접시 더 있다. 큼직한 벚굴과 한입에 쏙 들어가는 성게알 미역쌈.식욕을 돋우기 위한 애피타이저로 이보다 더 근사한 메뉴가 또 있을까. 상을 차린 이의 솜씨도 보통이 아니다. 하나같이 심심한 듯하면서도 간이 맞는다. 이 집,당금마을 노을민박의 안주인 김정희 씨(57)의 손맛이다. 매물도에 놀러왔다 네 살 연하 남편을 만나 눌러앉은 김씨의 '요리신공'이 바야흐로 빛을 발하고 있다. '트라볼타 삼촌'이라면 동네에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잘생긴 남편보다 더 유명하게 말이다.

"매물도 주민들이 간식 등으로 먹던 것을 상차림으로 구성한 거예요. 갯바위에서 미역 작업을 하다 허기지면 성게를 잡아 즉석에서 싸먹던 게 성게 미역쌈이래요. 미리 전화를 주면 준비해 놓을 게요. "

이웃 대항마을에서는 마을 공동식당을 만들어 여행객들에게 어부밥상을 올릴 예정이다. 올여름 휴가철부터 맛볼 수 있을 것 같다. 대항마을의 김정동 어촌계장(63)은 "마을 할머니들이 식당을 공동 운영토록 해 여행객이 구수한 이야기도 들을 수 있게 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물론 어부밥상만 고집할 이유는 없다. 매물도에는 때깔이 다른 자연산 회가 넘친다. "5만원어치 회를 썰어달라고 통통배에 전화하면 집으로 배달해줍니다. 자연산이어서 조금 비싸지만 돈 아깝다는 생각은 안 들 거예요. 4월께면 방파제에서 낚시체험도 할 수 있어요. 뜰채로 건져올릴 정도로 고기가 많아 아이들이 좋아하죠.밑반찬만 가져오면 먹는 걸 해결할 수 있어요. "

◆섬 풍경에 두둑해진 마음의 배

매물도에서는 혹시 밥시간을 놓치더라도 배가 고프지는 않을 게 틀림없다. 맑은 공기와 좋은 경치가 '마음의 배'를 불려주기 때문이다. 당금마을은 아기자기한 볼거리가 많다. 마을의 생활 디자인이 정말 예쁘다. 마을집들에 딱 어울리는 문패,장소 특성을 척 알 수 있는 아티팩트가 섬마을 분위기와 절묘히 어울린다.

요즘 유행인 걷기도 즐길 수 있다. 매물도를 한 바퀴 도는 5.2㎞의 탐방로가 좋다. 대항마을에서 서지먼당(서지언덕) 아래 안부를 거쳐 오른쪽으로 올라가는 장군봉 전망이 압권이다. 바위전망대에 서면 호수 같은 한려수도가 내려다보인다. 장군봉 정상 전망이 특히 장쾌하다. 소매물도와 등대섬이 프레임 안으로 들어온다. 이어지는 길은 원시 그대로다. 이제는 야생으로 뛰어다니는 흑염소가 길을 막고 물끄러미 쳐다보기도 한다. 꼬돌개는 근사한 해넘이 장소다. 전염병과 기근으로 마을사람들이 모두 고꾸라진 곳이라서인지 가익도와 소지도 뒤로 넘어가는 일몰 색이 처절하다. 바로 옆 소매물도와 등대섬은 매물도보다 더 유명하다. 그만큼 여행객도 많이 찾는다. 등대섬에서 하루 두 번 물이 빠지면 드러나는 몽돌길인 열목개를 지나 올라선 소매물도 망태봉(152m) 정상.하얀 등대가 여신처럼 서 있는 등대섬 풍경을 어찌 묘사해야 할까.


◆ 여행팁

서울에서 경부고속도로~대전 비룡분기점~통영대전중부고속도로~통영.강남버스터미널과 남부터미널에서 통영행 고속버스가 다닌다. 매물도에 들어가려면 통영항 여객터미널에서 배를 탄다. 한솔해운(055-645-3717)이 오전 7·11시,오후 2시10분 하루 세 차례 운항한다. 매물도까지 1시간20분 걸린다. 왕복 2만7300원.거제시 저구항에서도 하루 네 차례 여객선이 운항된다. 매물도에서 펜션과 민박을 이용할 수 있다. 당금마을 박성배 이장(010-8929-0706),김인옥 어촌계장(010-3844-9853),대항마을 이규열 이장(010-4847-9696),김정동 어촌계장(010-6340-1514),소매물도 이석재 이장(010-2810-7704) 등이 연결해준다.

매물도에는 식당이 없다. 민박집에 말해두면 식사를 준비해준다. 당금마을에서는 노을민박 등에서 어부밥상을 차린다. 1인 1만5000원.통영시청 관광과 (055)650-4613,www.tongyeong.go.kr

매물도(통영)=김재일 기자 kj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