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쏜다'는 말로 유명한 무하마드 알리는 한때 세계 권투의 최강자였다. 알리의 특징은 부드럽게 춤추듯 운동을 한다는 점이다. 정밀기계부품의 조립에서도 부드러운 것이 중요하다. 자동차 엔진이나 변속기 내부의 베어링과 축을 조립할 때 '압입(Force Insertion·억지 끼워맞춤)'이라는 방법을 많이 쓴다. 삽입(헐거운 끼워맞춤)은 축 외경이 축구멍 내경보다 작은 것을 끼워넣는 것인 데 비해 압입은 외경이 더 큰 기계부품을 상대적으로 내경이 작은 부품속으로 힘을 가해 집어넣는 것을 의미한다. 금속은 약간의 신축성이 있어 외경이 수십 미크론가량 더 커도 압입할 수 있다. 이 공정에서 사용되는 로봇장비가 바로 정밀압입시스템이다. 서울 구로디지털밸리에 있는 씨앤엠로보틱스는 이 장비를 도요타자동차 등에 수출하고 있다.


씨앤엠로보틱스에는 일본 기술자들이 자주 찾아온다. 도요타자동차와 히타치 등의 관계자들이다. 일본 굴지의 제조업체들이다. 이 회사를 찾는 것은 제품을 사거나 조립 공법에 대한 노하우를 얻기 위한 것이다. 일본은 독일과 더불어 세계 제조업의 양대 산맥이다. 그중에서도 굴지의 제조업체들이 도대체 왜 종업원 18명에 불과한 한국의 중소기업을 찾는 것일까.

이 회사가 만드는 제품은 정밀압입시스템이다. 센터마스터(Center Master)와 서보프레스(Servo Press),스마트 모니터링시스템(Smart Monitoring System) 등이다. 이들 장비는 한마디로 구멍을 정확히 찾아 금속과 금속을 부드럽게 조립하는 장비다.

자동차를 보자.엔진이나 변속기는 베어링 밸브 피스톤 오일실 등 수많은 정밀 부품을 조립해 완성한다. 이 경우 금속과 금속을 축구멍에 끼워서 제품을 만드는 경우가 많다. 이때 축구멍보다 약간 더 큰 물체를 집어넣으려면 손으로 작업하기가 힘들다. 잘 끼워지지 않을 뿐 아니라 어렵사리 끼워도 위치가 제대로 맞지 않아 주행 중 소음이 나거나 내구성이 떨어질 수 있다.

씨앤엠로보틱스는 바로 이 장비를 만든다. 이 회사의 센터마스터는 축구멍의 중심을 정확히 찾아준다. 그런 뒤 서보프레스는 축을 축구멍속에 부드럽게 밀어넣는다. 스마트 모니터링시스템은 그 과정의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컴퓨터 화면에 기록하는 장비다. 언제,어떤 조건에서 어떤 힘을 가해 조립이 됐는지를 보여준다.

씨앤엠로보틱스는 일종의 로봇장비인 이 장비를 2000년부터 차곡차곡 개발했다. 그 뒤 이 장비를 현대자동차 기아자동차 현대위아 현대파워텍 만도 한라공조 등 국내 업체를 비롯해 일본의 도요타자동차 야마하 히타치 등에 납품하고 있다. 이 중 일부 기술들은 세계 최초로 개발한 것이다. 창업자인 주상완 대표(52)는 "우리가 갖고 있는 지식재산권은 24건에 이르며 출원한 것을 포함하면 39건에 달한다"고 밝힌다.

주 대표는 다양한 경력을 가진 기업인이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 금오공고에 진학한 그는 이때 전국기능올림픽대회에 출전해 금메달을 따기도 했다. 충남대 기계교육공학과와 대위(ROTC 20기) 예편을 거쳐 잠시 직업훈련학교에서 교사 생활을 하기도 했다. 인생에 전환점이 찾아온 것은 교직에 있을 때 일본 문부성 장학생으로 선발되면서부터다.

일본 정부가 신분을 보장하고 석 · 박사학위 과정 동안 전액 장학금과 월 18만엔 이상의 생활비,왕복 항공비,휴가비 등을 제공해주는 파격적인 조건의 장학생이다. 그는 32세에 국립 오사카대 석사과정에 진학한 뒤 2년 만에 석사를,5년 만에 기계공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박사과정 재학 중에는 오사카대의 정식 교원으로 임용돼 학부생과 대학원생들을 가르치며 연구를 병행했다. 학위를 받고 오사카대에서 교수생활을 하면서 정년까지 편하게 생활할 수도 있었지만 뜻한 바가 있어 귀국을 결심했다.

고국에서 뭔가 더욱 보람 있는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해서다. 10년 만에 귀국한 뒤 2000년 6월에 씨앤엠테크놀로지(씨앤엠로보틱스의 전신)를 창업했다. 창업 초기에는 개발비를 마련하기 위해 대기업체 연구소의 실험장비나 생산라인의 정밀검사장비 등을 수주해 납품했다. 틈틈이 시간을 내 자사 고유 브랜드 제품인 삽입용 센터링디바이스를 창업 첫해 개발했고,이듬해 압입용 센터링디바이스도 출시했다. 자신의 전공을 살려 신제품을 개발한 것이다.

2002년에는 AC서보 프레스를 국내 최초로 출시했다. 2003년에는 국내 최초로 잉크젯 방식의 컬러필터 공정장비를 개발했다. 2006년에는 센터마스터(압입용 센터링디바이스에 하중측정기능을 갖춘 장비)를 선보였고 로봇공학연구소도 설립했다. 2007년에는 도쿄와 상하이에 해외대리점을 개설했다. 2009년에는 스마트 모니터링시스템 개발에 착수해 샘플 출시를 눈앞에 두고 있다. 이는 다기능이 집약된 지능형 모니터링 시스템으로 실험용 개발용 생산용 등 다양한 용도로 활용이 가능한 최신 전자기기이다. 아울러 2009년에는 로봇을 이용한 압입시스템을 국내 최초로 개발했다. 이와 같이 거의 매년 한 개꼴로 독창적인 신제품과 신기술을 선보였다.

주 대표는 "이들 제품 중 압입용 센터링디바이스와 센터마스터는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며 "베어링,오일실,기어,정밀축 등의 압입 불량을 근원적으로 방지해주는 제품으로 특히 자동차의 조립 품질을 향상시키고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고 밝혔다.

그가 이같이 앞선 제품을 내놓을 수 있는 것은 "풍부한 현장경험이 밑바탕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기능올림픽에 나가기 위해 준비하면서 정밀기계를 많이 다뤄 봤고,실업계 교사로 재직하면서 실질적인 기능을 가르친 것이 밑바탕을 형성했다"는 것이다. 오사카대 박사과정 재학 중 교수요원으로 특채된 것도 바로 이런 실전 경험을 인정받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주 대표는 "우리나라의 정밀기계 산업발전을 위해선 '기능적인 연구원과 연구하는 기능인'의 양성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현장의 기능과 연구능력이 결합된 인재,다시 말해 문무를 겸비한 참된 인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단순히 기능만이 뛰어나거나 현장을 모른 채 학문적 연구성과만 갖고선 시장성이 있는 제품 개발이 요원하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때로는 뛰어난 연구성과라 해도 시장논리와 맞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고 이런 경우 쓸모 없는 기술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종업원을 기능적인 연구원으로 양성하고 있다.
그에게는 몇 가지 목표와 꿈이 있다. 단기적으로는 첫째,씨앤엠로보틱스의 축적된 메커트로닉스 기술을 유사 분야에 접목시켜 로봇 분야의 신시장을 창출하는 것이다. 둘째,글로벌 시장 진출을 가속시키는 것이다. 이와 관련,일본 시장 개척을 확대하기 위해 노력 중이며 이제는 독일 시장 진출을 추진하고 있다. 일본과 독일에서 인정받으면 세계시장에서 제품을 팔기가 훨씬 쉬워질 것으로 보고 있다. 셋째,제대로 된 이공계 학교를 운영하는 것이다. 그는 "재력이 생기면 기능과 연구능력을 동시에 배양할 수 있는 학교를 설립해 이 사회에 꼭 필요한 기술인력을 길러내고 싶다"고 밝혔다.

김낙훈 중기전문기자 n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