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농구장에 고릴라 나왔는데 못 봐?…착각에 발목 잡히지 말라
서울 광화문에서 종로3가까지 걸어간다고 치자.걷는 동안 마주치는 사람,자동차,광고판,간판 등 수많은 장면을 눈으로 본다. 그런데 종로3가에서 "방금 걸어오면서 본 것을 말해보라"고 하면 서너 가지 이상 꼽기가 힘들다. 보긴 했지만 주의깊게 보지 않은 탓이다. 이런 현상에 대해 불교 수행자들은 "눈은 봤으나 마음이 보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기억력을 높이려면 눈 가는 곳에 마음을 두라"고 말한다.

이 같은 현상을 과학적으로 실험한 결과가 있다. 1999년 인지심리학자인 크리스토퍼 차브리스(유니언칼리지대 교수)와 대니얼 사이먼스(일리노이대 교수)가 하버드대 심리학과 건물에서 했던 실험이다. 이들은 6명의 학생들을 두 팀으로 나눠 한 팀은 검은색 셔츠를,다른 한 팀은 흰색 셔츠를 입힌 뒤 두 팀이 뒤섞여 농구공을 패스하게 했다.

그리고 이 장면을 동영상으로 찍어 학생들에게 보여주고 검은색 팀의 패스는 무시하고 흰색 셔츠 팀의 패스 횟수만 말없이 세도록 했다. 동영상 중간에는 고릴라 의상을 입은 여학생이 9초에 걸쳐 무대 중앙으로 걸어와 선수들 가운데 멈춰 서서 카메라를 향해 고릴라처럼 가슴을 두드리고는 걸어 나갔다.

동영상을 본 학생들에게 "고릴라를 봤느냐?"고 묻자 실험 참가자 중 약 절반은 고릴라를 보지 못했다고 했다. 여러 차례 반복해서 실험해도 마찬가지였다. 학생들은 왜 고릴라를 보지 못했을까.

[책마을] 농구장에 고릴라 나왔는데 못 봐?…착각에 발목 잡히지 말라
《보이지 않는 고릴라》에서 차브리스와 사이먼스는 "기대하지 못한 사물에 대한 주의력 부족의 결과"라고 설명한다. 과학적 명칭은 '무주의 맹시(盲視)'다. 실험대상자들은 패스 횟수를 세는 데 너무 집중한 나머지 바로 눈앞에 있는 고릴라에는 눈이 먼 것이라는 얘기다.

이들은 '고릴라 실험'을 비롯해 놀랍고 재미있는 실험들을 통해 우리가 일상에서 경험하는 착각을 주의력 · 기억력 · 자신감 · 지식 · 원인 · 잠재력 등 6가지의 착각으로 나눠 설명한다. 2001년 2월 미국 핵잠수함 그린빌호가 수면으로 급상승하다 일본 어선을 들이받은 것은 주의력 착각 때문이다.

저자들은 "사실상 인간의 행동 중 일상의 착각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분야나 착각을 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며 "생각과 행동을 지배하는 착각에 대해 알고 나면 직관의 한계를 알고 삶의 방식을 재정비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한다.

[책마을] 농구장에 고릴라 나왔는데 못 봐?…착각에 발목 잡히지 말라
행동심리학적 관점에서 인간의 내면을 파헤친 《언씽킹》에도 이런 착각의 사례들이 등장한다. 2008년 코스트코는 웹사이트를 통해 독특한 카나리아빛 다이아몬드 반지를 팔기 시작했다. 10.61캐럿의 이 보석 공인감정가는 26만4765달러.그런데 코스트코는 이 반지를 18만달러에 판매했다. 할인폭이 자그마치 8만4000달러.놀란 수백만명이 코스트코 웹사이트를 방문했고,매장으로 향하는 사람들이 줄을 이었다.

하지만 이는 속임수였다. 코스트코에서 18만달러짜리 반지를 본 사람들의 머릿속에선 145달러짜리 에스프레소 머신이 무척 싸게 느껴졌고,1000달러짜리 정도 물건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게 되기 때문이다. 비싼 물건의 기준이 달라진 것이다.

저자는 이처럼 언뜻 이해되지 않는 사람들의 판단과 선택,결정의 배후에 숨은 유혹과 조작의 실체를 드러낸다. 고정관념,크기,놀이,놀라움,이야기,공정함에 대한 집착,익숙한 것에 대한 선호,눈에 띄고 싶어하는 욕망,특별한 것의 일부가 되고 싶어하는 것,단순함,디자인 등이 판단의 훼방꾼이다.

다행인 것은 이들 훼방꾼의 방해에도 왜곡되지 않는 언싱킹(unthinking)의 영역이 우리 내면에 존재한다는 점.저자는 "비즈니스에 성공하려면 언싱킹을 통해 정확한 니즈(needs)와 원츠(wants)를 알아야 한다"며 다양한 성공 사례와 언싱킹 찾는 법을 알려준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