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기업이 처한 상황과 환경이 다른데 일률적인 잣대로 기업들을 몰아붙이는 것은 분명 시장주의를 역행하는 것입니다. "

외국계 대기업 최고경영자(CEO)인 A씨는 최근 정운찬 동반성장위원장이 대기업의 이익 일부를 협력사와 나누도록 하는 '협력사 이익 공유제(profit sharing) 도입'을 언급하자 이처럼 말하고는 입을 닫았다. 기업들의 얘기는 안중에 없는 정부를 향해 무슨 얘기를 더 하겠느냐는 의사 표현이었다.

'비즈니스 프렌들리(business friendly)'를 표방한 MB정부가 오히려 기업의 목소리를 외면하고 귀를 막는 상황이 도를 넘어섰다는 지적이 쏟아지고 있다. 실현 가능성에 대한 명확한 검토도 없이 협력사 이익 공유제를 들고 나온 데 이어 전국경제인연합회,대한상공회의소 등 경제 단체가 도입 논의 자체를 연기해줄 것을 요구해온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 역시 2015년부터 강행하기로 결정했다.

정부는 또 정유회사와 통신회사를 상대로 여론몰이식 가격 인하 압박에 나서면서도 해당 기업체의 고충과 하소연은 애써 '나몰라라'하고 있다는 불만이 나오고 있다. 대형 유통사의 판매수수료 공개 추진도 일방통행식이다.


◆지금 산업계는 '벙어리 냉가슴'

대기업 관계자는 이와 관련,"대 · 중소기업 상생의 취지가 틀렸다고 하는 것은 아니다"고 전제한 뒤 "하지만 MB정부의 구호가 '비즈니스 프렌들리'에서 '공정사회' '상생'으로 넘어가면서 (정부 쪽에서) 대기업은 더 이상 동반자가 될 수 없다고 선을 그은 듯하다"고 말했다.

정부가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 도입 시기를 2015년 1월1일로 못박자 조기 시행에 강력하게 반대했던 기업들은 "해도 해도 너무하는 것 아니냐"는 푸념을 쏟아내고 있다.

수정 법률안 입법예고 소식이 전해진 지난 25일 긴급 모임에 참석했던 경제단체 관계자는 "미국 일본 중국 등 강대국들도 눈치를 보고 있는 마당에 우리만 서두르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말했다. 국내 탄소배출량의 약 10%를 차지하는 포스코는 연 2조3000억원가량 매출이 감소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정운찬 동반성장위원장이 밝힌 협력사 이익 공유제는 곧바로 실현 가능성을 두고 논란이 일었지만,아직껏 정부의 공식적인 입장 표명이 없어 기업들은 답답해하고 있다. 대기업 관계자는 "전형적인 반시장주의 정책이자 탁상행정의 표본으로 기업에서는 난리가 난 이슈인데도 정 위원장 개인 의견인지,정부와 함께 검토한 것인지 분명한 설명조차 내놓지 않고 있다"고 푸념했다.

◆"우리가 왜 부도덕한 집단이냐"

정유업계는 국내 제품 판매에서 얻는 이익률이 2~3% 수준에 불과한데도 정부가 업계 전체를 폭리를 일삼는 부도덕한 집단으로 여론몰이하고 있다며 불만이 가득하다. 두바이유 현물가격이 100달러 이상에서 5일간 머무르자 정부는 에너지 경보 단계를 28일부터 '주의'로 격상했지만,유류세 인하에 대해서는 여전히 소극적이다.

정유회사의 한 임원은 "국내 업체들의 경쟁력이 없으면 어떻게 수출을 하겠느냐"며 "시장이 개방돼 있지만 수입사들이 자리를 못잡는 것도 그만큼 국내 업체들이 잘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항변했다.

통신사들도 정부의 막무가내식 가격 인하 압박에 "1인당 통신비가 매년 줄고 있고 신규 투자비를 고려해야 한다"고 일관되게 주장하고 있지만,쇠귀에 경 읽기라고 지적하고 있다.

백화점과 할인업체 역시 공정거래위원회가 판매수수료 공개를 추진하는 것과 관련,"납품업체들의 주장에만 귀를 기울일 뿐 우리 목소리는 어디에도 없다"고 토로하고 있다.

김수언/조재희 기자 soo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