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유가가 두바이유 기준으로 100달러를 돌파한 22일,"이쯤이면 유류세 인하를 검토해야 하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전혀 검토하고 있지 않은데 또 단골 메뉴냐"는 반응을 보였다. "물가안정을 위해 세금을 동원하는 나라는 없다"는 레퍼토리도 덧붙였다.

하지만 유가는 당분간 계속 오를 가능성이 커 정부도 마냥 거부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유가가 상승세를 지속해 2008년에 기록한 역사적 고점(140달러)으로 내닫게 되면 정부로서도 생각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2008년에 비록 한시적이긴 해도 이미 유류세 10% 인하를 단행했던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유류세와 환율이 원인

국제 유가가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2008년 7월 국내 주유소의 휘발유 판매가격은 ℓ당 1922원60전이었다. 국제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가량인 현재(2월 셋째주 기준)는 휘발유가 ℓ당 1850원20전에 팔리고 있다. 불과 72원 차이다. 국제 유가는 2008년 최고점에 비해 28%가량 낮은 수준인데 국내 휘발유 가격은 3.8%밖에 차이가 안 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는 세금이다. 세금은 국내 휘발유 가격의 절반가량을 차지한다. 현재 휘발유에 붙는 유류세는 ℓ당 914원으로 소비자가격의 49.4%에 달한다. 2008년 7월 당시 ℓ당 829원90전이던 것보다 84원20전(10.1%)이나 더 많이 뗀다.

둘째는 환율 효과다. 국내 정유사는 원유의 대부분을 중동에서 수입한다. 원 · 달러 환율이 오르면 원유 도입단가가 높아진다. 원 · 달러 환율은 2008년 7월 1019원10전에서 현재 1120원80전으로 10% 뛰었다.

정유사들이 주유소에 공급하는 세전가격은 2008년 7월 ℓ당 927원20전이었던 것이 지금은 840원40전으로 9.4% 인하됐다. 국제 유가 인하폭과 비슷한 수준으로 주유소 공급가격도 인하됐다. 주유소 몫인 유통마진도 2008년 7월 ℓ당 165원50전에서 현재 95원70전으로 42.2% 떨어졌다. 결국 2008년과 지금의 기름값 차이는 '세금'과 '환율' 때문이다.

◆고민 커지는 정부

이런 이유로 정부 내에서조차 유류세 인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정부가 기름값 인하를 위해 만든 석유가격 태스크포스(TF)에 참여하고 있는 지식경제부 관계자는 "주유소 마진을 줄여도 기름값이 ℓ당 20~30원가량 낮아지는 데 그친다"며 "유류세 인하 없이는 소비자들이 기름값 인하 효과를 체감하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석유협회에 따르면 정유사들이 정제과정을 통해 얻는 마진은 1.5% 수준으로,금액으로 따지면 ℓ당 9원꼴이다. 반면 세금을 10% 낮추면 휘발유 소비자 가격은 91원가량 낮아진다. 기름값을 떨어뜨리는 데는 세금만큼 효과적인 수단이 없는 셈이다.

더구나 유류세 인하는 2007년 말 17대 대통령선거 당시 이명박 후보가 내건 공약 중의 하나였다. 이 후보는 당시 "유가 상승으로 서민 부담이 지나치게 커지고 있다"며 "세계 최고 수준인 유류세를 10% 인하하겠다"고 공언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올초에도 신년사에서 유류세 인하를 검토하겠다고 했다.

◆2조원의 세수 감소 우려

세제 당국인 재정부도 이 점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유류세 인하 카드를 쉽게 꺼내지 않는 이유가 있다. 2008년의 기억 때문이다.

재정부 세제실 관계자는 "국제 유가가 폭등한 2008년에도 유류세 인하 요구가 거세 3월부터 12월까지 한시적으로 10%를 인하했지만 유가 상승세가 계속 이어지면서 가격을 낮추는 효과가 크지 않았다"며 "효과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세수만 1조4000억원 축내는 결과를 냈다"고 말했다.

한 해 유류세로 걷히는 세금은 20조원가량으로 연간 총 세수(178조원)의 11.2%에 달한다. 유류세를 10% 깎으면 2조원의 세수가 날아간다. 재정을 걱정해야 하는 정부로선 선뜻 내놓기 어려운 카드다. 재정부 관계자는 "유류세는 어차피 한시적 대책에 불과하다"며 "섣불리 선택할 경우 정작 원유수급에 차질이 생겨 본격적으로 유가가 폭등할 때는 쓸 수 있는 카드가 없어진다"고 우려했다.

정종태/주용석 기자 jtch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