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비아 반정부 민주화 시위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면서 통신망이 두절,한국인 근로자와 주재원 1400여명의 안전 및 건설현장 추가 피해 여부가 확인되지 않고 있다. 정부는 "근로자와 가족들이 모두 안전한 직원 숙소와 시설로 피신했다"고 밝혔지만 현지의 구체적인 상황을 보고받지 못하고 있다. 폐쇄된 벵가지 공항에 이어 현재 정상 운영 중인 트리폴리 공항도 폐쇄될 가능성이 적지 않고 일부 육로도 차단돼 한국 근로자들은 사실상 고립 상태다. 정부는 긴급 대피를 위해 전세 항공기를 운항하는 방안을 강구 중이다. 그러나 23일 급파 예정인 외교통상부 국토해양부 직원들도 리비아 입국비자를 받지 못해 초조해하고 있다.

◆통신 두절로 '발동동'

국토부 중동대책반은 22일 리비아 내 한국 건설업체 근로자 등이 모두 안전한 캠프로 이동했다고 발표했다. 캠프란 건설 현장에서 떨어진 곳에 별도로 마련한 직원 숙소나 시설을 말한다. 도태호 중동대책반장은 "육로 이동에 따른 위험 탓에 인근 국가나 다른 지역으로의 대피는 적절치 않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리비아 체류 한국인은 벵가지 109명 등 동북부 도시 333명과 트리폴리 등의 상사 주재원까지 합하면 모두 1412명으로 파악됐다.

문제는 통신 수단이 끊겨 국내 본사와 정부 대책반이 대책을 수립하는 데 차질을 빚고 있다는 점이다. KOTRA에 따르면 리비아 현지 인터넷은 지난 19일 오전부터,전화는 21일 저녁부터 불통이다. 중동대책반은 리비아 당국이 기지국 등 관리 가능한 수단을 총동원,인터넷과 유 · 무선전화 등 통신을 엄격히 통제하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정부는 외교부와 국토부 직원 2명으로 구성된 신속대응팀에 위성휴대폰 3대를 지급해 통신 루트를 확보한다는 방침이다.

건설업체들에 따르면 리비아 체류 한국인들은 고립된 상황이다. 건설관리(CM)업체인 한미파슨스 관계자는 "벵가지에 26명,트리폴리에 4명의 직원이 고립됐다"며 "리비아 밖으로 나올 수 없어 현지 주민들의 주택을 얻어 생활하고 있다고 알려왔다"고 말했다.

◆건설현장 피습 이어져

리비아 현지인들은 20일 저녁과 21일(현지시간)에도 국내 건설현장 4~5곳을 습격,약탈했다. 트리폴리에서 가까운 자위야시의 한일건설 현장에는 21일 낮 12시 무렵 주민 50여명이 난입해 차량 1대와 PC 2대를 빼앗아 갔다. 22일 오후에 겨우 통화가 됐다는 한일건설 관계자는 "회사 안전대책은 따로 없어서 일단 현지 대사관 통제를 받기로 했다"고 전했다.

21일 새벽 1시께는 동명기술공단의 자위야시 현장에서 차량 2대가 탈취당했으며 숙소도 파손됐다. 비슷한 시각에 트리폴리에서 동쪽으로 100㎞ 떨어진 쿰스지역의 이 회사 2개 건설현장 숙소에 현지인들이 진입,차량 3대와 현금 노트북 휴대폰 등을 빼내갔다. 지중해 연안과 많이 떨어진 남부 내륙 젠탄시의 이수건설 현장도 비슷한 습격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대우건설 비상상황실 관계자는 "주민들이 흉기를 들고 10명 단위로 돌아다니며 차량과 컴퓨터 등을 약탈하고 있다"고 말했다.

◆육 · 해 · 공 수송로 확보 노력

우리 교민과 근로자들의 리비아 탈출은 22일부터 시작됐다. 외교부 관계자는 "한국시간으로 22일 오후 4시께 리비아 벵가지 동쪽 토부룩 소재의 K중소기업 직원 9명이 자동차편으로 출발해 이집트 국경도시인 엘-살룸에 도착했다"고 말했다.

주(駐)이집트 대사관 측은 철수 중인 교민들과 휴대폰으로 수시로 통화하면서 이동구간의 안전을 점검하는 한편 담당영사를 국경지역에 급파해 안전한 철수를 지원했다. 철수 중인 기업인들은 이집트의 수도인 카이로를 거쳐 귀국할 예정이라고 외교부는 전했다. 외교부 관계자는 "아직 다른 기업인들의 철수 계획이 파악된 것은 없다"고 말했다.

이집트 정부는 리비아와 접경 지역에 24시간 임시수용 캠프를 설치하고 국경을 넘어오는 사람들을 수용하고 있다고 외교부는 설명했다. 한편 주이집트 대사관 측은 이집트 항공 측과 카이로~트리폴리 간 전세기 운항을 협의할 예정이다.

장규호/조성근/장진모 기자 daniel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