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옷 1000벌보다 발레복 100벌이 힘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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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맨틱 발레 '지젤' 무대·의상 총괄 스피나텔리
안 입은 듯 가볍고 편안해야…장식·소매 끝까지 신경
낭만적인 분위기도 디자인
안 입은 듯 가볍고 편안해야…장식·소매 끝까지 신경
낭만적인 분위기도 디자인
"지젤,팔을 번쩍 들어봐.편안해? 허리를 2㎜씩 줄여야겠어.소매는 좀 더 짧게."
거장의 손이 지젤의 몸을 스쳤다. 세계적인 무대 · 의상 디자이너 루이자 스피나텔리(70).그가 만든 깃털 같은 발레 의상들이 19세기 시골 처녀 지젤을 서울의 국립발레단 연습실로 옮겨 놓는다. 한땀 한땀 손으로 뜬 자수가 지젤의 어깨와 가슴 부분을 수놓고 은은하게 염색한 실크 치마는 봄바람처럼 하늘거린다. 남자주인공 알브레히트 역을 맡은 김현웅도 감탄사를 연발한다. "아,마치 아무것도 안 입은 것 같아!"
오는 24일 개막하는 '지젤'의 무대와 의상 디자인을 총괄하는 루이자 스피나텔리를 예술의전당에서 만났다.
하얀 머리를 묶은 그는 마음씨 좋은 할머니처럼 보이지만 지난 50일간 이뤄낸 성과는 놀랍다. 올해 1월 한국을 찾아 국립발레단원들의 몸 치수를 일일이 잰 뒤 이탈리아로 돌아간 그는 50일 후 100벌이 넘는 의상과 무대의 배경이 될 낭만주의 작화 4점을 비행기에 싣고 왔다. 작화의 크기만 해도 가로 20m,세로 15m에 달한다. 의상과 소품은 세계 3대 오페라 극장 중 하나인 이탈리아 라 스칼라 극장의 의상실 '브란카토 아틀리에'에서 직접 만들어왔다.
"몸은 좀 피곤했지만 한국 관객에게 처음으로 프랑스 낭만 발레를 보여준다는 생각에 들떠서 작업했어요. 발끝으로 사뿐사뿐 걷는 낭만 발레의 느낌이 옷에서도 한껏 드러나죠.무대 작화는 1841년 파리에서 초연 당시 유행하던 낭만주의 화풍을 재현했고요. "
그는 수백년 전통의 이탈리아의 브레라예술대에서 무대예술을 전공했다. 라 스칼라 극장에서 1965년 오페라 '프란체스카 다 리미니'로 데뷔한 그는 롤랑 프티,게오르게 발란친 등 세계적인 안무가와 함께 무대를 만들어왔다. 파리오페라극장,베로나극장,도쿄 신국립극장,모스크바 볼쇼이극장 등을 오가며 '호두까기 인형''백조의 호수''한여름밤의 꿈' 등 발레와 베르디의 오페라 '운명의 힘''아이다' 등을 연출했다. 오페라,연극,발레를 번갈아가며 맡은 그에게 어떤 작업이 가장 까다로운지 물었다. "오페라 의상 1000벌은 눈 감고도 만들지만 발레 의상 100벌은 정말 어려워요. 우선 무게가 가벼워야 하기 때문에 소재부터 신중해야 하고,점프 동작이나 남자가 여자를 들어올릴 때 위험하지 않도록 장식은 물론 소매 끝까지 신경써야 하니까요. "
반세기 동안 무대를 위해 살아온 그의 디자인 철학은 간명했다. "편안한 거죠.아름답고 예쁜 것도 중요하지만 무대에 선 배우들이 편안해야 보는 관객들도 편히 즐길 수 있으니까요. "
가장 기억에 남는 공연으로는 1987년 이집트의 카이로에서 했던 오페라 '아이다'를 꼽았다. "피라미드와 스핑크스를 앞에 두고 했어요. 그때 제작한 옷만 1300벌입니다. 어마어마한 규모였죠.중간에 등장하는 발레 무용수만 90명이 넘었으니까. 도시 전체가 '아이다'의 배경이 됐어요. 공연장 주변에 안내원,경비원들에게도 고대 의상을 입혔지요. "
그는 25년간 모교인 브레라예술대에서 발레 의상 디자인을 가르치다 지난해 정년퇴임했다. 해마다 서너명씩 그의 품을 거쳐간 한국 학생들도 이제 꽤 많은 수로 늘었다. 일흔 살의 나이가 무겁지는 않을까. "제 옷을 입을 사람들을 만나 연구하고 디자인하는 일,연출가와 함께 무대 분위기를 만들어가는 일은 평생 저를 배움으로 이끌었어요. 지금 이렇게 즐거운데 나이가 절 멈추게 할 수 없을 걸요. "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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