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우리금융 차기 회장 내정] 한동우 회장 내정자는 신한銀 창립멤버…'생명' 순이익 10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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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한은행 부행장과 신한생명 사장 및 부회장을 지낸 정통 '신한맨'이다. 부산 출신으로 부산고와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했다. 1971년 한국신탁은행에 입행한 것을 시작으로 은행권에 몸담았다.
1982년 신한은행 설립사무국에 입사해 창립 멤버로서 신한과 인연을 맺었다. 이후 신한은행에서 종로지점장,인사부장,종합기획부장 등을 역임했다. 1993년 이사로 승진해 임원이 됐다. 나이 45세로 당시 은행권 최연소 임원으로 기록됐다. 당시만 해도 아무리 신설은행이라고는 해도 '40대 임원'이 탄생한 것은 파격적이었다. 이후 상무와 부행장을 지냈다. 임원을 세 번 연임하며 신상훈 전 신한금융 사장과 함께 신한의 차세대를 열어갈 '4룡'으로 꼽히기도 했다.
그러나 은행장이 되지 못하고 2002년 은행을 떠나 신한생명 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신한생명 사장 시절 121억원(2001년)에 불과하던 신한생명의 순이익 규모를 2006년 1236억원으로 5년 만에 열 배로 늘리는 성과를 냈다. 같은 기간 신한생명의 총자산도 1조6000억원대에서 6조4000억원대로 급증했다. 평소 "인간적 경영과 윤리 경영의 토대 위에서 성과주의 경영이 접목돼야 한다"는 경영철학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개인에 의존하기보다는 시스템이 작동하는 조직을 강조한다.
유창재/김혜정 기자 yoocool@hankyung.com
1982년 신한은행 설립사무국에 입사해 창립 멤버로서 신한과 인연을 맺었다. 이후 신한은행에서 종로지점장,인사부장,종합기획부장 등을 역임했다. 1993년 이사로 승진해 임원이 됐다. 나이 45세로 당시 은행권 최연소 임원으로 기록됐다. 당시만 해도 아무리 신설은행이라고는 해도 '40대 임원'이 탄생한 것은 파격적이었다. 이후 상무와 부행장을 지냈다. 임원을 세 번 연임하며 신상훈 전 신한금융 사장과 함께 신한의 차세대를 열어갈 '4룡'으로 꼽히기도 했다.
그러나 은행장이 되지 못하고 2002년 은행을 떠나 신한생명 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신한생명 사장 시절 121억원(2001년)에 불과하던 신한생명의 순이익 규모를 2006년 1236억원으로 5년 만에 열 배로 늘리는 성과를 냈다. 같은 기간 신한생명의 총자산도 1조6000억원대에서 6조4000억원대로 급증했다. 평소 "인간적 경영과 윤리 경영의 토대 위에서 성과주의 경영이 접목돼야 한다"는 경영철학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개인에 의존하기보다는 시스템이 작동하는 조직을 강조한다.
유창재/김혜정 기자 yoo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