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경제에 인플레이션 경보가 커지고 있다. 경고등이 켜진 곳은 중국 한국 브라질 칠레 등 주로 신흥국들이다. 치솟는 물가를 잡기 위해 금리를 잇따라 올리고 정부가 물가 잡기에 나섰지만 인플레이션 심리는 커져가는 분위기다. 왕성한 소비와 수출로 세계 경제를 떠받쳐야 할 신흥국들이 인플레이션에 대비해 긴축 모드를 본격화할 경우 성장 열기가 식을 수 있다는 점이 문제다.


◆통화가치 급등 곳곳 '경보음'

환율부터 심상치 않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9일 "말레이시아 링기트화와 대만 달러화의 미국 달러 대비 가치가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 발생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며 "아시아가 통화 절상 정책까지 동원해 인플레이션과 전쟁을 벌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신흥국들은 수출 의존도가 높은 만큼 자국 통화가치 상승은 경상수지 적자 등을 심화시키는 성장의 아킬레스건으로 작용한다. 그럼에도 통화가치가 상승하고 있는 것은 해당 국가들이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자국 통화가치 상승을 감수하면서까지 금리 인상을 시도한 결과라는 게 WSJ의 분석이다. 그만큼 인플레이션 상황이 심각하다는 얘기다.

한국의 원화가치는 2008년 9월 리먼브러더스 좌초로 인한 글로벌 금융위기 발발 당시 수준인 달러당 1100원대로 높아졌다. 중국 위안화 역시 이달 들어 이미 2거래일 연속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는 등 강세다. 중국 인민은행은 이날 달러당 위안화 환율을 전 거래일 대비 0.0010위안 하락한 6.5850위안으로 고시했다.

남미도 비상이다. 특히 브라질과 칠레의 물가 동향이 심상치 않다. 브라질 정부는 기초 물가지표인 IPCA물가지수가 지난달 0.83%를 기록했다고 이날 밝혔다. 지난해 12월(0.63%)보다 속도가 빨라졌다. 브라질 헤알화 역시 2년여 만에 최고치까지 치솟았다. 칠레의 페소화도 3년래 최고 수준으로 급등한 상황이다. 피오나 레이크 골드만삭스 금융애널리스트는 "통화가치 절상은 인플레를 잡는 마지막 수단"이라며 "한국과 대만,인도네시아 등이 이 카드를 쓰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내다봤다.

◆"물가 잡아라"…국제공조 잰걸음

중국이 잇따라 금리 인상 카드를 내놓고 있는 가운데 각국 정부의 금리 인상도 도미노처럼 번져갈 조짐이다.

중국은 지난 8일 춘제(春節) 연휴가 끝나자마자 금리를 0.25%포인트 전격 인상했다. 지난해 10월 이후 세 번째 인상이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매월 전년 대비 4~5%를 오가는 고물가와 씨름해온 중국은 채소와 곡물 등 농산물발 인플레이션 위험에 접한 상태다. 조용찬 중국금융연구소 연구위원은 "집값 급등과 식품가격 상승으로 팽배해진 국민들의 불만을 해소하지 못하면 이집트나 튀니지처럼 중국에서도 민주화 운동이 불붙을 수 있다는 위기감이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인도 태국 이스라엘 등은 이미 지난달 잇따라 금리를 올렸다. WSJ도 "조만간 한국 정부가 금리 인상을 단행할 것으로 보인다"고 예측했다.

중국의 추가 금리 인상도 점쳐진다. 데리우즈 코왈지크 크레디아그리콜 전략분석담당은 "올초 중국의 금리 인상 조치는 정책 목표가 성장에서 물가 억제로 전환했음을 좀더 분명히 보여준 것"이라며 "앞으로 최소한 두 번 이상 추가 금리 인상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물가를 잡기 위한 국제 사회의 공조도 발빠르게 진행 중이다. 통화가치 절상이나 금리 인상 카드만으로는 식량가격 상승 등에 따른 인플레이션 고삐를 죄는 데 한계가 있다는 판단에서다. 특히 곡물가격 급등으로 시작해 물가 전반이 급등하는 '애그플레이션(agflation)을 막기 위한 움직임이 두드러진다.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오는 6월 파리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앞서 G20 농업장관 회담을 열 것을 회원국에 요청했다. 식료품 비축량이나 파생금융상품 등의 거래 정보를 수집해 투기세력에 의한 가격 폭등을 막기 위해서라는 것이 아사히신문의 설명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도 이날 "G20 국가들이 식료품 가격 급등을 억제하기 위한 국제감시체제 창설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관우 기자/차병석 도쿄 특파원 leebro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