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채권펀드서 3조1천억 이탈…금융위기 이후 최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로 투자자금을 끌어모았던 채권 시장에서 빠르게 자금이 빠지고 있다.

인플레이션 우려에 채권 금리가 급등(채권가격 급락)하면서 채권 시장이 움츠러드는 것이다.

채권 금리가 오르면 채권 가격은 내려가게 된다.

지난 2년간 넘치는 유동성을 기반으로 주식과 채권이 함께 강세를 보였던 `어색한 동거' 구도에 균열이 생긴 셈이다.

전문가들은 안전자산(채권)에서 위험자산(주식)으로 자금이 이동하는 `머니 무브(Money Move)'가 본격화하는 신호탄이라고 보고 있다.

◇채권 엑소더스…韓ㆍ美 채권펀드서 대거 유출
6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상장지수펀드(ETF)를 제외한 국내외 채권형 펀드에서는 지난달 3조1천376억원이 순유출됐다.

지난해 12월 8천754억원에 이어 두 달째 채권펀드에서 자금이 빠져나간 것으로, 순유출 금액이 3조원을 넘은 것은 금융위기가 발생한 2008년 9월(3조6천643억원) 이후로 처음이다.

외국인도 국내 채권 시장에서 발을 빼는 양상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작년 12월 채권 시장에서 5조3천17억원의 외국인 자금이 순유출됐다.

이는 1998년 채권 시장이 개방된 이후로 최대 규모다.

올해 들어서는 1월 한 달간 약 4천400억원이 순유출되면서 유출 강도가 다소 약해졌다.

선진국 시장에서는 이런 현상이 더욱 뚜렷하다.

미국 자산운용협회(ICI) 자료를 보면 지난해 11월 미국 채권형 펀드에서는 약 8억5천만달러(한화 9천500억원)가 순유출됐다.

2009년 이후로 줄곧 순유입을 기록했던 채권형 펀드에서 22개월 만에 자금 유출이 발생한 것이다.

지난해 12월에는 채권형 펀드 순유출이 203억6천700만달러(약 23조원)로 급격히 불어났다.

반면 주식형 펀드에서는 자금 유출이 주춤해지면서 작년 11월 5억1천100만달러, 12월 8억2천600만달러가 각각 유입됐다.

전문가들은 미국 국채 금리가 전반적으로 상승 흐름을 보이는 만큼 채권 시장에서 자금 이탈이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증시 `머니 무브' 이어질까
채권은 예금과 더불어 대표적인 안전자산이다.

따라서 채권에서 빠져나온 자금이 고스란히 위험자산인 증시로 유입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아직은 금융위기의 트라우마(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투자자들이 주식 투자에 선뜻 나서지 못하고 있고, 은행 예금에서도 자금이 이탈하지 않고 있다.

다만, 채권시장의 위축은 글로벌 금융위기로 대두한 `안전자산 시대'가 저물고 있음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의미하는 바가 크다.

신영증권 김세중 이사는 "아직 채권에서 주식으로, 또는 예금에서 주식으로 자금이 이동하는 `머니무브'는 뚜렷하지 않다"며 "하지만 채권으로 자금이 유입되던 흐름에 균열이 생긴 점은 주목할만한 변화"라고 평가했다.

안전자산의 매력이 점차 감소하고 위험자산에 대한 선호도가 증가하는 점은 중장기적으로 증시에 우호적이다.

기본적으로 `금리 인상'이라는 이슈는 증시에 악재로 작용하지만, 요즘처럼 금리가 오르기 시작하는 초기 단계에서는 증시로 뭉칫돈이 유입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대우증권 김학균 투자전략팀장은 "증시에 가장 좋은 조건은 금리가 바닥을 치고 완만히 상승하는 것"이라며 "이때 시중자금은 채권에서 주식으로 이동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김세중 이사는 "지난 2004~2005년처럼 은행이 주력 상품인 예금을 제쳐놓고 주식형 펀드를 적극적으로 판매하는 쪽으로 영업정책을 바꾸면 자금이 대거 이동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이준서 기자 ju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