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동 금융위원장은 6일 인터뷰에서 강한 어조로 원전 수주 등 세계적 프로젝트의 파이낸싱을 위해 금융체제를 재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공공부문 정책금융 시스템에 큰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수출입은행 정책금융공사 무역보험공사 산업은행 등 정책금융기관들의 역할이 앞으로 큰 폭으로 달라질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김 위원장의 구상은 '투 트랙'이다. 공공부문과 민간부문에서 각각 대형 금융회사가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그는 우선 곳곳에 분산된 정책금융 기능을 1~2가지로 정리한다는 구상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역할이 서로 중첩되는 것이 많기 때문이다.

현재 정책금융 기능을 담당하는 기관은 4곳이다. 1976년 설립된 수출입은행은 수출 중소기업 등을 위해 시중금리보다 낮은 '정책금리'로 돈을 대는 기능을 주로 갖고 있다. 기획재정부 산하다. 수출입은행에서 1992년 떨어져 나온 무역보험공사(옛 수출보험공사)는 무역 관련 보증업무를 주로 수행한다. 주무 부처는 지식경제부다. 여기에 이명박 정부는 산업은행 민영화를 추진하면서 산은의 공적 기능 부문을 따로 떼내 '정책금융공사'를 2009년 설립했다. 그러나 정작 산은 민영화가 계속 미뤄지면서 2개 기관이 각기 비슷한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 중이다.

기관이 4개나 되다 보니 원전 수주 등 대형 프로젝트가 있더라도 함께 역량을 발휘하기 어려운 구조다. 예컨대 수출입은행이 대출 규모를 늘리기 위해서는 매번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서 국가재정 추가 투입(자본금 납입)을 의결해야 한다. 적시 대응이 어려울 뿐만 아니라 파이낸싱 기법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정책금융공사는 규모가 작고 최근 설립돼 국제적 위상이 산은에 비해 크게 떨어진다. 또 산은은 민영화를 앞두고 있어 공공 목적의 대형 투자에 손대기가 쉽지 않다.

금융위 내부에서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본식 해법' 등이 거론되고 있다. 일본은 국책 금융기관 난립에 따른 낭비를 방지하고 정책금융을 효율적으로 수행한다는 목적으로 관련 기관을 통 · 폐합해 2008년 10월 '정책금융공고(政策金融公庫)'를 설립했다. 금융위의 한 관계자는 "재정부 · 지경부 등의 반발이 있겠지만 우리도 일본처럼 대형 정책금융기관을 만들어야 한다는 수요가 있는 만큼 정부 차원에서 의지를 갖고 해볼 만한 프로젝트"라고 설명했다.

한 가지 숙제는 산은의 기능 재정립이다. 정책금융기관 대형화의 가장 빠른 방법은 산은을 그대로 정부 소유로 두고 다른 기능을 붙이는 것이지만 민영화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 문제다. 이미 정책금융공사 분리까지 실행돼 다시 되돌리긴 어렵다는 관측이 대부분이다. 김 위원장은 인터뷰에서 이 부분을 어떻게 할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금융위의 한 관계자는 "산은 민영화는 이미 이번 정권 내에 이뤄지기 어려운 과제가 됐다"며 "다음 정부에서 어떤 의지를 갖느냐에 따라 결과가 크게 달라질 수 있지 않겠느냐"고 내다봤다.

'투 트랙'의 또 다른 축은 민간부문 IB다. "돌아다니는 재무적 투자자(FI)들의 수많은 돈을 효율적으로 끌어댈 수 있는 파워풀한 IB가 있어야 한다"고 김 위원장은 말했다. 특히 국내 증권사 간 인수 · 합병(M&A)으로 대형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방향으로 자본시장법을 개정하겠다는 의지가 관측된다. 이를 위해 우리금융지주에서 우리투자증권을 분리 매각할 가능성도 내비쳤다.

금융위 관계자는 "공공부문의 파이낸싱 기능을 강화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세계적인 금융이라고 할 수 없다"며 "다양한 유동화 방식을 통해 시중 자금을 모아 제공할 수 있는 대형 민간 IB가 있어야 비로소 '양 날개'를 갖출 수 있다는 뜻"이라고 김 위원장의 말을 풀이했다.

'미스터 관치'로 불리며 규제 강화론자로 인식돼온 김 위원장이 금융회사 대형화와 세계적 IB 출현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시장은 앞으로 금융시장 판도가 어떻게 변할지 주목하고 있다.

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