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의 기업 조사 관행에 법원이 제동을 걸었다. 금감원이 절차를 제대로 지키기 않고 기업인을 조사한 뒤 작성한 증거자료에 대해 법원이 "증거로 인정할 수 없다"며 쐐기를 박았다. 수사기관이 아닌 금감원이 경찰 혹은 검찰처럼 강제적으로 조사하는 관행을 없애라는 주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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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감원,혐의자 심문 안돼"

6일 법원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은 지난달 28일 대한전선과 도이치증권 직원의 주식 시세조종 사건에 대한 판결에서 금감원에 소속된 조사역들은 특별사법경찰로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금감원이 아닌 금융위원회에 소속된 조사 공무원들은 검찰총장의 지명을 받고 형사소송법을 준용토록 권한이 주어져 있지만 금감원 조사역들은 그렇지 않다는 게 이유였다. 법원은 현행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규정대로 '증언을 위한 출석 등을 요구할 수 있는 권한'은 있어도 '위반행위의 혐의가 있는 자를 심문할 수 있는 권한'은 조사역에게 없다고 봤다.

이 사건에서 금감원 조사역 박모씨는 2008년 종로경찰서로부터 수사협조 요청을 받고 대한전선 직원과 도이치증권 직원의 장 마감직전 한미은행(현 씨티은행) 주식 대량거래가 정당한 헤지거래인지,시세조종 행위인지 여부에 대해 조사했다. 박씨는 이 과정에서 대한전선 직원 전모씨를 금감원에 출석시켜 주가조작 여부를 추궁하며 문답서를 받았다. 이후 그는 다시 전화로 통화하며 재차 추궁해 녹음,녹취록을 작성했다.

문제는 이후 발생했다. 전씨는 금감원에 출석해 말한 내용과 전화통화에서 진술한 부분을 법정에서 부인했다. 해당 진술의 증거능력 여부가 쟁점이 된 것.재판부는 "박씨는 증언을 받은 것이 아니고 전씨를 혐의자로 보고 심문행위를 했다고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전씨를 변호한 법무법인 태평양의 강동욱 변호사는 "전씨가 어두컴컴한 조사실에서 변호사 없이 혼자 8시간가량 조사받았고 전화통화 녹음 사실도 고지받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금감원은 반발,기업은 환영

금감원 측은 법원의 판결에 대해 '현실을 무시한 것'이라는 입장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금감원 직원의 조사 결과를 법원에서 제대로 인정하지 않는다면 주가조작과 같은 전문적인 범죄는 무방비 상태가 될 수밖에 없다"며 "미란다 원칙을 도입하는 정도는 가능하겠지만,지나치게 형식 논리에 얽매여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금감원에서 조사를 받아 본 기업 실무자들은 전씨의 사례에 공감을 표한다. 최근 조사를 받았다는 P기업의 한 실무자는 "금감원이 무서워 이의를 제기하기 힘든 게 현실"이라며 "조사를 받아보면 검찰청에 와 있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또다른 C기업 관계자는 "금감원이 달라는 자료를 안 주면 다른 건으로 보복할 가능성 때문에 두려워 다 줄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이번 판결은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사 관행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현행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에서는 공정위가 사건 당사자들을 출석시켜 의견을 들을 수 있도록 하고 있지만 혐의자 심문 권한은 명시돼 있지 않다. 공정위 역시 금감원처럼 사실상 불법적인 조사를 진행해 왔다는 것이 기업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임도원/이상은 기자 van7691@hankyung.com


◆ 특별사법경찰


사법경찰에는 일반사법경찰과 특별사법경찰이 있다. 특별사법경찰은 특수한 분야의 범죄에 한해 수사를 담당하며 일반사법경찰과 동일한 수사권을 가진다. 소속 기관장의 제청과 관할 지검장의 지명으로 임명된다. 법무부,국토해양부,식품의약품안전청 등 약 20개 정부 기관과 지방자치단체 40개 직종 공무원에 대해 특별사법경찰권을 부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