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 건전성에 연초부터 '빨간불'이 켜졌다. 구제역과 물가불안 등 예상치 못한 '복병'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어서다. 글로벌 금융위기 극복 과정에서 훼손된 재정 건전성을 회복하겠다는 정부 계획에도 차질이 우려된다.

◆추경예산 검토해야 할 판

구제역 발생에 따른 보상금과 백신 접종비 등은 정부 재정에서 대부분 나간다. 구제역에 따른 매몰 대상 가축 수가 28일 280만마리를 넘어섰다.

임기근 기획재정부 농림수산예산과장은 "현재까지 구제역과 관련돼 재정지출이 최종 확인된 것은 1조1000억원 정도"라고 말했다. 여기에다 관련 부처와 지방자치단체들이 구제역 검역 등에 썼지만 아직까지 청구하지 않은 돈을 합치면 2조원을 훌쩍 넘어선다는 것이 농림수산식품부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구제역 검역 등에 추가로 쓸 수 있는 재원은 장부상 2조7000억원가량이다. 갑작스런 재난 등 긴급 사태에 사용할 수 있는 일반회계의 목적예비비 5000억원,광범위한 용도로 쓸 수 있는 일반예비비가 1조2000억원 남아 있고,국가재정법에 따라 1조원을 대출받을 수 있다. 하지만 청구서가 아직 들어오지 않은 구제역 피해액(1조원가량)을 감안하면 정부가 실제로 구제역 검역에 추가로 쓸 수 있는 예산은 약 1조7000억원에 불과하다.

구제역 사태가 언제까지 계속될지 알 수 없고,조류인플루엔자(AI)마저 창궐하면 방역 예산은 더 들어가게 된다. 추경 예산을 편성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다.

◆물가 불안도 재정에 위협적

고물가도 재정을 위협하는 요인이다. 정부가 관세 인하 등에 나서면서 세수가 줄어들 것으로 우려된다.

재정부는 최근 가격이 급등한 돼지고기 고등어 분유 등 8개 품목에 대해 할당관세를 적용,수입 단가를 낮추기로 했다. 임종룡 재정부 1차관은 28일 할당관세를 적용해 무관세 수입되는 돼지고기 양을 늘리겠다고 밝혔다. 할당관세는 기본관세율의 40%포인트 범위 내에서 세율을 한시적으로 인하하는 탄력관세제도다. 정부는 작년 말에도 67개 품목에 할당관세를 적용했다.

소비자 물가불안이 올해 내내 계속될 것으로 우려되는 만큼 관세 인하에 따른 세수 감소도 상당히 클 것으로 예상된다. 올해 관세 수입은 약 11조원으로 예상했다. 세 부담을 20%가량만 낮춘다고 가정해도 재정 수입은 2조원 이상 줄어들게 된다. 임종룡 기획재정부 1차관은 "할당관세는 국민의 세 부담으로 이뤄지는 것"이라며 재정 악화를 우려했다.

물가 불안으로 소비위축 현상이 나타날 경우 세금 수입이 전반적으로 줄어들 수도 있다. 고영선 한국개발연구원(KDI) 재정 · 사회정책연구부장은 "물가 상승 자체가 세수를 줄이지는 않지만 전반적으로 부담이 되는 것은 사실"이라며 "정부가 비과세 · 감면 정비를 올해 세제개편의 핵심으로 잡은 것도 이 같은 불안을 반영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균형 재정 달성 늦어지나

정부가 지난해 발표한 중기재정운용계획(2010~2014년)에 따르면 관리대상수지는 2013년과 2014년 사이에 균형을 맞추는 것으로 돼 있다. 지난해 -2.7%를 기록한 국내총생산(GDP) 대비 관리대상수지 비율을 2013년 -0.4%,2014년 0.2%로 가져가겠다는 것이다. 2014년부터는 흑자 기조를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이 같은 계획은 향후 5년간 연평균 5% 정도의 경제성장을 전제한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낙관적이라는 지적을 받아온 상황에서 구제역 등 악재가 잇따라 터져 중장기 재정계획을 다시 짜야 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송태정 우리금융지주 수석 연구위원은 "구제역만으로도 지난해 30조원가량인 적자를 매년 줄여 2014년 2조7000억원 흑자로 돌려놓겠다는 계획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서욱진 기자 venture@hankyung.com


◆ 관리대상수지

통합재정수지와 함께 국가의 살림살이를 한눈에 보여주는 재정지표다. 통합재정수지는 연간 총지출에서 총수입을 뺀 것이고,관리대상수지는 통합재정수지에서 4대 사회보장성기금(국민연금기금,사학연금기금,산재보험기금,고용보험기금)을 제외한 것이다. 정부의 순(純) 재정상황을 보여주는 지표다. 정부가 발표하는 재정수지는 주로 관리대상수지를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