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세계적 인플레를 조장한다는 다른 국가들의 따가운 비난 속에 기존의 통화정책 궤도를 고수했다. 오는 6월 말까지 6000억달러를 풀어 경기를 부양하는 2차 양적완화 정책을 지속키로 했다. 2008년 12월 결정한 기준금리 연 0~0.25%도 상당 기간 유지된다.

◆"상품 가격은 올랐지만…."

FRB의 통화정책 결정기구인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는 이틀간 회의를 가진 뒤 26일(현지시간) 기존의 양적완화 정책을 유지한다는 발표문을 내놨다. 지난달 회의 결과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경기가 지속적으로 회복되고 있지만 고용시장에 상당한 개선을 가져올 수준의 속도는 아니다"는 진단도 내놨다.

지난해 3분기 미국의 경제성장률은 2.6%로 2분기 1.7%보다 높아졌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최근 전망한 올해 성장률은 종전보다 0.7%포인트 올라간 3.0%였다. 벤 버냉키 FRB 의장은 그동안 "경제가 연 2.5% 이상 꾸준히 성장해야 고용시장이 눈에 띄게 좋아질 것"이라고 말해왔다. 지난해 12월 미국의 실업률은 9.4%로 전달보다 0.3%포인트 떨어졌다.

FRB가 통화정책 기조에 변화를 주지 않는 다른 이유는 근원물가 상승률이 낮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회의 때와 달리 이번 발표문에 "(원자재를 비롯한) 상품가격이 상승했다"고 새 문구를 넣어 경계심을 나타내긴 했지만 FRB는 "장기적인 인플레 기대가 안정적이고,근원물가는 하향세를 벗어나지 못했다"고 강조했다.

근원물가는 가격 변동성이 큰 식료품과 석유 등 에너지 가격을 제외한 것으로 지난해 12월 0.1% 상승하는 데 그쳤다. 물가 상승률이 2%를 넘어서면 적극 관리한다는 게 FRB의 내부 방침이다.

더욱이 이번 정책은 의결권을 가진 11명이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2차 양적완화 정책에 우려를 표시했던 필라델피아 연방은행의 찰스 플로서,댈러스 연방은행의 리처드 피셔,미니애폴리스 연방은행의 나라야나 코커라커타 총재까지 찬성했다. 토머스 호니그 캔자스시티 연방은행 총재는 올해부터 FOMC 회의에 참석하지 않는다. 그는 인플레가 우려된다며 조기 금리 인상을 주장해 온 매파였다.

◆긴축 나선 유럽 · 중국 반발

FRB의 이런 통화정책은 행정부의 거시 재정정책과 보조를 같이하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26일 의회 국정연설을 통해 장기 성장을 위한 토대 부문에는 투자를 하겠다고 분명히 밝혔다. 연구개발(R&D)과 교육,청정 에너지,초고속 인터넷망,고속철도 등 사회기반시설 투자를 예로 들었다. 법인세 인하와 전반적인 규제 재검토 정책 역시 같은 맥락이다. 미국 경제가 살아야 세계 경제도 탄탄해진다는 인식을 깔고 있다.

그러나 재정 긴축으로 방향을 잡은 유럽,돈줄죄기로 긴축에 나선 중국 등 아시아 국가들과 브라질 등은 미국 정책에 반발하고 있다. 중국과 브라질의 비판 목소리가 특히 크다. 2차 양적완화 탓에 달러 등 외화가 대량 유입돼 자국 내 인플레를 초래하고,통화가치까지 상승시켜 수출 경쟁력을 떨어뜨린다고 주장해왔다.

미국이 양적완화와 초저금리 정책으로 인플레를 해외에 수출한다는 시각도 있다. 로널드 매키넌 미 스탠퍼드대 교수는 월스트리트저널 기고문에서 "1971년,2003년,2010년 미국은 낮은 금리와 달러 평가절하 정책으로 전 세계에 인플레와 자산 거품을 야기했다"고 주장했다. 또 "투기세력들은 미국에서 낮은 금리로 달러를 빌려 선물시장에 투자,주요 원자재 가격을 급등시켰다"고 비판했다. 매키넌 교수는 이어 "미국이 1971년부터 세계 기축통화인 달러를 찍어내면서 다른 국가들의 불만을 사왔지만 이를 무시했다"며 "이는 전 세계와 미 경제를 불안정하게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워싱턴=김홍열 특파원 com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