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26일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공청회를 열고'재정통계 개편안'을 발표했다. 이 개편안은 최신 국제기준에 최대한 맞췄다는 것이 기획재정부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민간기업 회계와 동일하게 '발생주의'원칙을 도입했고 비영리 공공기관 부채도 국가 채무에 포함시켰다.

하지만 117조원(2010년 6월 말 기준)에 달하는 부채를 안고 있는 LH(한국토지주택공사)는 국가채무 대상에서 빠지는 등 새로운 재정통계도 허술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공무원 및 군인연금 충당금도 제외시켜 논란이 일고 있다.


◆주요 공기업 부채 제외

재정통계 개편안에 따르면 올해 회계연도 결산 때부터 회계기준이 '현금주의'에서 '발생주의'로 바뀐다. 이렇게 되면 미지급금과 선수금 예수금 등 예전에는 국가부채에 포함되지 않았던 것들이 새로 포함돼 국가채무가 늘어나게 된다.

중앙 · 지방재정만 포함돼 있던 '정부' 범위에 비영리 공공기관이 추가된 것도 새로운 내용이다. 비영리 공공기관은 원가보상률(판매액/생산원가)이 50% 이상인 공공기관을 말한다. 정부 기능을 대신 수행하는 20개 민간관리기금도 정부에 포함시키기로 했다.

문제는 이 기준에 따라 100조원대의 부채를 안고 있는 LH,4대강 사업을 하고 있는 수자원공사가 국가채무 통계에서 빠졌다는 것이다.

개편안은 또 공무원 · 국민연금의 충당 부채(지출 시기나 금액이 불확실한 부채)를 국가채무에 넣지 않기로 했다. 국민연금이 보유한 국채도 정부 간 내부 거래로 간주해 포함시키지 않기로 했다.

◆국제기준 선별 도입

LH는 국제통화기금(IMF)이 2001년 마련한 국제기준에 따라 국가채무 대상에서 제외됐다. 하지만 LH 부채 가운데 임대주택 공급 등 정부 정책을 대신 수행하면서 늘어난 것이 많아 '실질'을 따져보면 국가부채에 당연히 포함돼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날 공청회 토론자로 참석한 안종범 성균관대 경제학 교수는 "공기업 부채가 빠진 것은 이번 개편안의 한계"라며 "LH와 수자원공사 등 공기업 부채는 보조 지표를 만들어서라도 체계적으로 관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른 공기업과 재정통계 개편안에서 적용한 공기업 구분 기준이 다르다는 점도 혼란을 야기할 것으로 보인다. 법률에서는 '자체 수입액이 총수입액의 2분의 1 이상인 공공기관'을 공기업으로 정의했다.

개편안이 국제기준을 무시하면서까지 공무원과 군인연금의 충당금을 국가채무에서 뺀 것도 문제다.

두 연금의 충당 부채는 국가회계의 재무제표인 '재정상태표'에는 부채로 분류돼 혼란이 가중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 '입맛'에 따라 개편안을 만든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국가채무 '짜맞추기' 논란

구본진 기획재정부 재정업무관리관은 "예단하기는 힘들지만 이번 개편을 통해 국가채무가 조금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구체적인 수치는 작업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는 연말께야 나오겠지만 채무가 증가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국제기준에 맞추면서도 현재의 국가채무와 비슷한 수준을 유지할 수 있게끔 정부가 개편안을 '손질'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이번에 국가채무에서 빠지게 되는 국민연금의 국채 보유 규모는 현재 100조원에 달한다.

100조원이나 국가채무가 줄어드는 효과가 발생하는데도 지금보다 국가채무가 소폭이나마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는 것은 발생주의 적용 등으로 늘어나는 채무 규모가 그만큼 크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정부 입장에서는 지난해 말 국가채무 393조~394조원의 25%가량을 차지하는 LH의 부채를 포함시킬 수 없는 절박한 사정이 있었을 개연성이 크다는 얘기다. 공무원연금 등의 충당부채를 뺀 것도 같은 맥락이다.

공청회 토론자인 김동열 현대경제연구원 정책연구실장은 "실질적인 국가채무를 증가시킬 수 있는 5500여개나 되는 지방 공기업과 기금은 통계 자체가 제대로 정리돼 있지 않다"고 말했다.

서욱진/유승호 기자 venture@hankyung.com

◆ 발생주의, 현금주의

발생주의는 '발생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비용과 수익을 인식하는 세무 · 회계기준을 말한다. 현금을 실제 주고받지 않아도 경제적 사실이 일어나면 이와 관련된 손익을 계산한다. 발생주의와 대비되는 현금주의는 현금의 수입과 지출에 따라서만 손익을 따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