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높여잡고 있다. 미국의 경기회복 속도가 예상보다 빠르게 진행되고 있어서다.

한은은 미국의 회복에 힘입어 수출이 당초 전망 수준보다 늘어날 것이며 이에 따라 물가상승 압력이 더욱 커질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민간 경제연구소와 일부 경제학자들은 한은이 지나친 낙관론을 펴고 있으며,정책이 잘못 운용될 경우 한국 경제가 스태그플레이션(경기침체 속 물가상승)에 빠질 위험이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한은 성장률 5%로 높이나

이상우 한은 조사국장은 24일 "미국의 경제 상황이 한 달 사이 완전히 바뀌었다"며 "미국의 성장률이 당초 예상한 수치보다 0.6%포인트 높은 3%를 웃돌 것이란 견해가 대세인 만큼 우리도 이를 반영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중수 한은 총재가 지난 19일 금융연구원 강연에서 "미국의 올해 성장률이 3.5%를 넘을 것이란 얘기가 나오고 있어 한국도 성장률 전망치를 높여야 하는 상황"이라고 한 발언과 같은 맥락이다. 올해 미국 성장률에 대해 한은은 2.4%,국제통화기금(IMF)은 2.3%,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2.2%로 내다봤었다.

이 국장은 "미국 경제의 빠른 회복은 무엇보다 수출을 늘리는 요인으로 작용해 수요 측면에서 국내 물가상승 압력에 상당한 영향을 주게 돼 있다"고 밝혔다. 이 국장은 다만 "당장 성장률과 물가상승률 전망치를 조정하지는 않을 것이며 오는 4월 정기 발표 때 중국의 긴축이나 유럽 재정위기 영향 등을 종합고려해 수치를 내놓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국장은 또 "올해 실질 국내총생산(GDP) 규모가 장기 추세치를 넘을 수 있을 것으로 분석됐다"고 말했다. 그는 "실질 GDP와 잠재 GDP 간의 차이를 뜻하는 GDP갭이 지난해 하반기 플러스로 돌아선 데 이어 올해는 플러스 폭이 완만하지만 확대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나친 낙관론" 경계 목소리도

삼성경제연구소와 LG경제연구원은 경기 진단과 관련,한은과는 180도 다른 의견을 내놓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GDP갭을 2009년 -3.2%,지난해 -1.1%,올해 -0.5%로 여전히 마이너스 상태라고 추산하고 있다. GDP갭이 마이너스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은 수요 측면에서의 물가상승 압력이 크지 않다는 얘기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최근 물가상승의 양상을 '애그플레이션(농산물 발 물가상승)'이라고 규정하고 정책금리 인상보다는 미시적 대응이 바람직하다고 권했다. LG경제연구원 역시 GDP갭 추정치를 지난해 -1.7%, 올해 -0.9%로 제시했다.

오정근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GDP갭이 지난해 3분기 플러스로 돌아섰다가 유럽 재정위기 등의 여파로 다시 마이너스로 떨어졌으며 올 2분기나 3분기께 플러스로 돌아설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며 "3분기 이후에도 플러스 폭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표학길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국의 잠재성장률은 아직 5% 안팎인데 한은이 지나치게 낮게 잡은 감이 있다"며 "최근 물가상승은 원자재가격 변동에서 비롯된 것이며 수요압력에 따른 게 아니다"고 한은을 비판했다.

박준동 기자 jdpow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