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튀니지'는 어디] 후세인 교수형…차우셰스쿠 총살형…밀로셰비치 심장마비 급사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쫓겨난 독재자 비참한 말로
글로벌 워치
글로벌 워치
시민혁명이나 쿠데타,선거혁명에 의해 쫓겨난 독재자들의 말로(末路)는 대개 비참하다. 용케 막대한 재산을 빼돌리는 데 성공한다 해도 반대파의 끊임없는 위협을 피해야 하는 운명이거나 갑작스런 질병에 시달리는 사례가 적지 않다. 국제수사 공조가 발달하면서 해외재산이 동결되는 경우도 많아 안전한 해외 망명 생활을 보장받기도 쉽지 않다.
지난 18일 고국 아이티로 돌아온 장 클로드 뒤발리에 전 대통령을 기다린 건 경찰이었다. 부패 혐의를 받아 곧바로 체포된 그는 19세에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권좌를 15년간 틀어쥔 철권 통치자였지만 쫓겨난 뒤 25년간 해외를 전전해왔다. 정국 혼란을 틈타 귀국했지만 그의 앞날은 여전히 어둡다.
프랑스가 망명을 받아주지 않아 어렵사리 사우디아라비아행 비행기를 탄 벤 알리 전 튀니지 대통령의 미래도 평탄치는 않을 전망이다. 빼돌린 재산은 막대하지만 제대로 쓸 수 있을지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부인 레일라가 빼돌린 1.5t(670억원)가량의 금괴를 포함해 재산이 50억파운드(9조원)에 달한다는 게 유럽 언론들의 추산이다. 튀니지 과도정부와 시민들은 '알리 일가의 재산을 끝까지 추적해 몰수하겠다'고 벼른다. 스위스와 프랑스 정부 역시 발빠른 금융거래 제한 조치에 동참한 상태다. 그로서는 돌발 악재일 수밖에 없다.
루마니아 철권 독재자 니콜라에 차우셰스쿠는 특히 '극단적 최후'의 전형으로 꼽힌다. 그는 루마니아 반정부 시위가 민중봉기로 돌변한 1989년 크리스마스에 부인과 함께 헬기로 탈출하다 반군에 의해 즉결 총살형을 당했다. 처형되기 직전까지 25년간 6만명의 시민을 처형하는 등 '악독한' 철권통치로 원성을 산 차우셰스쿠 부부는 무덤에서조차 편치 못했다. 루마니아 당국이 지난해 신원 확인을 이유로 무덤을 발굴,시신에서 DNA시료를 채취한 것이다.
2003년 12월 고향인 티크리트의 토굴에서 미군에 생포된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은 3년 만인 2006년 12월 교수형에 처해졌다. 24년간 철권통치를 해온 말로였다. 이라크 형법이 사형을 금지한 만 70세를 4개월 앞둔 시점이다. 미군이 사형 집행을 서두르지 않았다면 살아남을 수도 있었던 때였다.
20년간의 독재 끝에 1986년 부인 이멜다와 함께 막대한 재산을 가지고 하와이로 피신한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전 필리핀 대통령은 3년 뒤 질병으로 사망했다. 재산을 제대로 써보지도 못했다. 11년간 장기 집권했던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전 세르비아 대통령 역시 코소보 내전 직후인 2000년 권좌에서 쫓겨난 뒤 2006년 헤이그 감방에서 전범 재판을 받던 중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1979년 이란 혁명으로 축출된 무하마드 레자 팔레비 국왕 가족의 일생은 비극의 정점에 있다. 40여년간 군림했던 팔레비 국왕은 축출된 지 1년 만에 췌장암으로 사망했다. 아들 알리레자 팔레비는 올초 미국에서 권총 자살했다. 막내딸 레일라 역시 우울증에 시달리다 2001년 약물 과다로 숨졌다.
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
지난 18일 고국 아이티로 돌아온 장 클로드 뒤발리에 전 대통령을 기다린 건 경찰이었다. 부패 혐의를 받아 곧바로 체포된 그는 19세에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권좌를 15년간 틀어쥔 철권 통치자였지만 쫓겨난 뒤 25년간 해외를 전전해왔다. 정국 혼란을 틈타 귀국했지만 그의 앞날은 여전히 어둡다.
프랑스가 망명을 받아주지 않아 어렵사리 사우디아라비아행 비행기를 탄 벤 알리 전 튀니지 대통령의 미래도 평탄치는 않을 전망이다. 빼돌린 재산은 막대하지만 제대로 쓸 수 있을지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부인 레일라가 빼돌린 1.5t(670억원)가량의 금괴를 포함해 재산이 50억파운드(9조원)에 달한다는 게 유럽 언론들의 추산이다. 튀니지 과도정부와 시민들은 '알리 일가의 재산을 끝까지 추적해 몰수하겠다'고 벼른다. 스위스와 프랑스 정부 역시 발빠른 금융거래 제한 조치에 동참한 상태다. 그로서는 돌발 악재일 수밖에 없다.
루마니아 철권 독재자 니콜라에 차우셰스쿠는 특히 '극단적 최후'의 전형으로 꼽힌다. 그는 루마니아 반정부 시위가 민중봉기로 돌변한 1989년 크리스마스에 부인과 함께 헬기로 탈출하다 반군에 의해 즉결 총살형을 당했다. 처형되기 직전까지 25년간 6만명의 시민을 처형하는 등 '악독한' 철권통치로 원성을 산 차우셰스쿠 부부는 무덤에서조차 편치 못했다. 루마니아 당국이 지난해 신원 확인을 이유로 무덤을 발굴,시신에서 DNA시료를 채취한 것이다.
2003년 12월 고향인 티크리트의 토굴에서 미군에 생포된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은 3년 만인 2006년 12월 교수형에 처해졌다. 24년간 철권통치를 해온 말로였다. 이라크 형법이 사형을 금지한 만 70세를 4개월 앞둔 시점이다. 미군이 사형 집행을 서두르지 않았다면 살아남을 수도 있었던 때였다.
20년간의 독재 끝에 1986년 부인 이멜다와 함께 막대한 재산을 가지고 하와이로 피신한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전 필리핀 대통령은 3년 뒤 질병으로 사망했다. 재산을 제대로 써보지도 못했다. 11년간 장기 집권했던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전 세르비아 대통령 역시 코소보 내전 직후인 2000년 권좌에서 쫓겨난 뒤 2006년 헤이그 감방에서 전범 재판을 받던 중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1979년 이란 혁명으로 축출된 무하마드 레자 팔레비 국왕 가족의 일생은 비극의 정점에 있다. 40여년간 군림했던 팔레비 국왕은 축출된 지 1년 만에 췌장암으로 사망했다. 아들 알리레자 팔레비는 올초 미국에서 권총 자살했다. 막내딸 레일라 역시 우울증에 시달리다 2001년 약물 과다로 숨졌다.
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