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대란 현실화] 유화업체 "판박이 재앙…한전, '슈퍼甲' 이라도 이번엔 못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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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산단 입주업체들 격앙
수백억 들인 전선로 교체, 이번 사태로 무용지물
정전사고 터질 때마다, 한전 "원인 불명" 無대책
수백억 들인 전선로 교체, 이번 사태로 무용지물
정전사고 터질 때마다, 한전 "원인 불명" 無대책
"전형적인 후진국형 사고로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고도화시설이 맥없이 주저앉는 게 말이 됩니까?"
18일 오전 GS칼텍스 여수공장.김명수 계전2팀장은 전날 여수산업단지 일대에서 발생한 갑작스러운 정전 사고로 공장 가동이 중단된 직후부터 밤새 복구작업을 벌였다. 김 팀장은 "철야작업을 통해 수소와 스팀 공급 장치를 정상화하는 데 성공했지만 복구가 생각보다 더딘 상태"라며 "이번 사고로 손실이 이만저만이 아니지만 더 어처구니없는 건 앞으로도 비슷한 일을 대책 없이 감수해야 한다는 사실"이라며 분통을 터트렸다.
여수 산단 정전사태의 원인을 놓고 한국전력과 석유화학업체 간에 책임 공방이 팽팽하다. 한전은 사고 당일 보도자료를 내고 "GS칼텍스 내 개폐기가 차단된 것이 정전의 원인"이라며 GS칼텍스에 책임을 물었다. 이에 대해 GS칼텍스 등 업체들은 "여수화력발전소 내 폭발사고가 원인"이라며 한전 측 주장을 반박하고 있다.
◆화력발전소 사고 진실게임
여수산단 입주 회사들은 한전의 사고 원인 발표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2008년 일어난 정전 사고 때 소송 직전까지 갔던 업체들은 이번엔 공동 대응을 통해 한전 측에 재발 방지와 대책 마련을 촉구하겠다고 나섰다. GS칼텍스는 이날 "한전이 주장하는 순간전압 강하로는 정전이 일어날 수 없다"며 "공장 내 전류표시계에 15만4000V 전압 표시가 뜨지 않은 것으로 볼 때 발전소에서부터 전력 공급이 완전 중단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GS칼텍스 측은 정전이 발생한 오후 4시8분께 여수화력발전소 내 스위치야드(전력개폐장치장)에서 발생한 폭발 사고를 원인으로 꼽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목격자들에 따르면 발전소 내 유리창이 흔들리고,전기가 깜빡깜빡거렸다고 한다"며 "우리가 개폐기를 내려 정전이 일어났다는 주장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GS칼텍스가 용성변전소가 아닌 여수화력발전소 내의 변전소에서 전기를 공급받고 있는 점도 사고 원인 조사에서 논란거리다. 전날 한전은 발전소와 용성변전소를 연결하는 선로에서 이상이 발생했다고 발표했었다. 한전 관계자는 "직접 연결돼 있진 않지만 전체 전압에 문제가 생기면서 GS칼텍스 쪽 개폐기가 먼저 작동했을 수 있다"며 "개폐기가 내려간 이유 등 자세한 원인에 대해선 조사 중"이라고 말했다.
◆반복되는 정전 사고
GS칼텍스 여수공장은 2006년과 2008년에도 정전 사고가 발생,수백억원대의 누적 손실을 입었다. 전력 공급업자인 한전은 사고 때마다 원인조사를 벌였지만,조사는 언제나 '알 수 없는' 원인에 의한 사고라는 결론으로 끝났다. 원인 분석이 없으니 대책도 없었다.
오히려 기업들이 나서 설비를 보강했다. 이용길 GS칼텍스 계전1팀장은 "그동안 전력 현대화 10개년 계획에 따라 수백억원을 들여 노후 차단기와 케이블 배전반 등을 교체했다"며 "2008년 사고 이후엔 자체 예산 100억원을 들여 송전선로 복선화까지 마쳤다"고 말했다. 회사 측은 한전에 대한 직원들의 불만과 불신을 의식해 '이번만은 그냥 넘어가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전력을 독점 공급하고 있는 한전에 대해 불만 표시를 자제했던 과거와 달라진 모습이다.
정전사태로 가장 큰 피해를 본 GS칼텍스는 최소 300억원의 피해 규모를 추정하고 있다. GS칼텍스 관계자는 "정제마진이 최고 수준인 상황에서 기회비용까지 더하면 규모는 몇 배로 더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공장이 이날도 가동을 멈추면서 석유제품 수출 유조선들은 선적 부두에 들어오지 못하고 바다에서 대기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일정이 차례로 밀리며 이에 따른 피해액도 클 것으로 보인다.
GS칼텍스에서 파라자일렌을 받아 합성섬유 원료인 고순도테레프탈산(TPA)을 만들고 있는 삼남석유화학도 공장 가동 중단에 따라 피해 규모가 수백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남석유화학은 TPA 생산능력이 170만t으로 단일 공장으로는 국내 최대 규모다.
여수=최성국/조재희 기자 skcho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