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내 부부인 이 대리는 최근 3년 새 가슴을 두번이나 졸였다. 첫번째는 2008년 금융위기 직후였다. 불확실한 상황이라 회사에서 구조조정을 실시할 것이란 소문이 나돌았다. 구조조정 1순위는 이 대리 같은 사내커플이 될 것이란 얘기도 곁들여졌다. 1998년 외환위기직후에 실시한 구조조정 때도 사내커플 중 한 명이 우선적으로 회사를 떠났다.

다행히 구조조정 없이 지나가 한시름 놓았다. 하지만 둘째를 임신한 아내가 건강이 좋지 않아 출산휴가를 앞당겨 1년 써야 하는 상황에 부딪쳤다. 휴가 신청서를 냈지만 결재가 날지 의문이었다. 다행히 결재가 났다. 상사는 "능력있는 사원이 아이를 가졌다고 회사를 그만두는 것은 회사에서도 손해라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이 대리와 같은 사내부부는 또다른 애환을 갖고 있다. 업무적으로 서로에게 도움이 될 수 있어 좋다. 반면 'xxx의 남편''◆◆◆의 아내'라는 꼬리표를 달고 살아야 해 행동거지를 항상 조심할 수밖에 없다.

◆결혼 안 할거면 연애도 말라

사내 결혼은 사내 연애부터 시작한다. 불문율은 비밀에 부치는 것.결혼에 성공하지 못한 채 소문이라도 나면 "쟤들 사귀다 헤어졌대"라는 꼬리표가 평생 따라다니기 때문이다. 물류회사에 다니는 임모 대리(32 · 여)는 약 4년간 다른 팀 후배와 열애 끝에 결혼하기로 했다. 연애생활 4년은 말 그대로 비밀데이트 시간이었다. 사내에서는 애써 외면했다. 나름대로 철저하게 보안을 지켰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웬걸.청첩장을 돌리던 날 동료들은 "데이트하는 거 봤다","네 남친에게 보낸 문자가 나한테 온 적도 있다"는 등의 반응을 보였다. 임 대리는 "우린 숨긴다고 했지만 알 만한 사람은 그렇고 그런 사이라는 걸 다 알았던 셈이었다"며 "결혼하지 못하고 헤어졌으면 그 후폭풍을 어떻게 감당했을까 아찔하기 짝이 없다"고 말했다.

◆사장님 주례,피할 순 없나요?

중소기업에서 직장 동료와 결혼을 앞둔 김모씨(32 · 남)는 사장에게 청첩장을 드리러 갔다. 사장은 결혼을 흔쾌히 축하해 주면서 "주례는 정했는가?"라고 물었다. 김씨가 "대학 시절 지도 교수님을 모시기로 했다"고 대답하자 사장은 "그래? 할 수 없구먼.내가 해주고 싶었는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고민하던 김씨는 결국 '주례 교체'를 결정했다. 교수에겐 적당히 둘러대고 사장에게 "부디 저희 주례를 맡아주셨으면 좋겠다"고 부탁했다. 김씨는 "갑작스런 결정이었지만 그 뒤로 사장님이 우리 부부를 볼 때마다 흐뭇해하시는 걸 보면 잘한 것 같다"고 자평했다.

◆왜 말 끝마다 '남편','아내'인데?

나모 대리(31 · 여)는 3년 전 사수와 불꽃 튀는 연애 끝에 결혼에 성공했지만 뛰어난 남편 때문에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 그의 남편은 성실함,유능함,처세술,빼어난 실적으로 주위에서 '◆◆씨는 임원까지 될 수 있는 인물'이라고 칭찬을 받을 정도였다. 이에 비해 나 대리는 평범했다. 그가 버벅댈 때마다 "남편이 설명 안 해줘?"라는 핀잔을 들어야 했다. 인사고과에서 B를 받은 자신과 달리 수년째 S등급을 놓치지 않는 남편을 보며 짜증도 났다. 나 대리는 "남편이 유능한 건 좋지만 비교 대상이 되니 죽을 맛"이라며 "동기도 아닌 남편과 경쟁해야 하느냐"고 털어놨다.

대기업 사내 부부였던 윤모씨(32 · 여)는 약학전문대학원에 도전하고 싶어 2년 전 회사를 그만뒀다. 그러나 문과 출신인 그에게 약학전문대학원 공부는 무리였다. 설상가상으로 임신까지 해 버려 결국 공기업에 임시직으로 근무하게 됐다. 그러나 퇴사한 지 2년이 돼도 직장 사람들이 남편에게 윤씨의 근황을 물어오는 통에 짜증나 미칠 지경이다. 그는 "집에 있는데 남편이 전화를 걸어 내 옛 상사를 바꾸더라"며 "공부는 어떻게 돼 가느냐고 묻는데 속상하고 자존심 상해서 눈물이 났다"고 말했다.

◆내 생활이 없어졌다

금융회사에 근무하는 정모 대리(32)는 6개월 전 사내 결혼을 발표했다. 동료들은 하나같이 그에게 '안 됐다'며 동정어린 시선을 보냈다. 처음엔 그 의미를 알지 못했으나 결혼 후 두 달이 채 안 돼 깨닫게 됐다. 그가 회사에서 받는 연봉,수당,성과급 등에 대해 아내가 빤히 알 수밖에 없었던 것.그는 "이제 내 지갑은 1000% 투명 지갑"이라며 "비자금 만들기가 아예 불가능해졌다"고 울상을 지었다.

중견기업에서 일하는 박모 대리(33)는 잘 생긴 외모와 유머감각,걸출한 실적으로 여직원들의 인기를 한몸에 받았다. 그러나 타 사업부 여친과 결혼을 발표하자 회사 여직원들은 모두 '암묵적으로' 아내의 친구가 됐다. 박 대리가 친하게 지내던 여직원 혹은 귀여운 여후배와 차라도 마시면 그 정보는 아내에게 곧바로 전달됐다. 그는 "회사에선 여직원들에게,집에선 아내에게 감시받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결혼한 지 2년이 지나도 계속되는 '서프라이즈 집들이'에 한모 대리(31 · 여)는 미칠 지경이다. 문제는 결혼 전 남편과 함께 모시던 부장.그 부장은 특히 그 둘을 아꼈던 데다 술을 좋아하다보니 한 대리가 부서를 옮긴 후에도 회식만 하면 한 대리 집으로 들이닥쳤다.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고 했거늘

주식 투자의 불문율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는 사내 부부에도 적용된다. 사내 커플에 대한 차별은 여전히 존재한다. 글로벌 금융위기 일부 기업들은 사내 커플 중 여자를 정리해고 1순위로 삼았다. 승진인사에서 둘 중 하나가 누락되는 경우도 흔하다.

화장품 회사에 다니는 이모 대리(33 · 여)는 혼인신고를 해 놓고 일부러 결혼은 6개월 후에 했다. 부부가 모두 승진인사를 앞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대리는 "둘 다 승진에 성공한 뒤 청첩장을 돌렸다"며 "커플이란 사실을 아는 사람도 몇 안 됐기 때문에 꽤 성공적이었다"고 말했다.

◆사내 부부 6계명

사내 부부들은 성공적인 회사 생활과 가정 생활을 위해 나름대로의 불문율을 갖고 있다. 이들이 말하는 '사내부부의 6계명'의 첫번째는 'A부터 Z까지 하나도 숨기지 말자'다. 어차피 회사생활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만큼 하나라도 숨기려 하다가 걸리는 날에는 신뢰가 무너지기 십상이다. 두 번째는 모든 걸 다 알기 위해 상대방을 구속해서는 안 된다는 것.피차 밝히고 싶지 않은 사실을 갖고 있는 만큼 적당히 넘어가는 것도 배려라는 지적이다. 세 번째는 표정 관리다. 집에서 싸웠어도 회사에서 티 내지 말아야 한다. 네 번째로는 배우자가 속한 부서 사람들에게 잘해야 한다는 점이 꼽힌다. 다섯번째는 남말하기 좋아하는 회사 내에선 이성 직원과의 관계에 신경써야 한다. 여섯번째는 배우자를 경쟁자로 생각하면 안 된다는 점이다.

강유현/이관우/이정호/김동윤/이상은/이고운 기자 yhk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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