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이 복지정책을 경쟁적으로 쏟아내고 있다. 한나라당의 잠재적 대선 주자가 '한국적 복지'를 들고 나오자,지방선거에서 무상급식으로 재미를 본 민주당은 무상 의료,무상 보육,무상(반값) 등록금 등 '무상 시리즈'로 맞서고 있다. 이에 뒤질세라 정부 여당의 관심도 친(親)서민,공정사회,맞춤형 복지 등 서민층을 넘어 보편적 복지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복지정치가들은 천문학적 규모의 복지비용은 일부러 감추고 달콤한 말만 시끄럽게 합창한다. 이런 점에서 복지 '포퓰리즘'이라고 욕을 먹는 것은 당연하다. 이들이 내세우는 복지확대의 논거는 시장경제가 양극화와 삶의 불안을 야기하는 만큼 국가가 나서서 시민들의 삶과 애환을 보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과거 사회주의 유령이 복지국가의 탈을 쓰고 정치권에 출몰한 것 같은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더욱 더 가관인 것은 "복지는 가장 격이 높은 사회 제도이며 그래서 그것은 시대적 요구"라는 복지 선동가들의 주장이다.

그러나 '공짜 시리즈' 같은 복지주의는 필연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는 중요한 이유가 있다.

첫째로 복지정책의 확대는 반드시 세금 부담을 늘리고 정부 부채의 증가를 부른다. 다른 방도가 없기 때문이다. 방대한 복지예산은 재분배를 위한 기금이다. 주인이 없는 돈이어서 책임지는 사람도 없다. 남용과 낭비,'공유의 비극'은 당연한 결과다.

둘째로 복지 이념은 도덕의 파괴를 가져온다. 국가가 개인의 삶을 책임지기 때문이다. 개인의 책임의식과 독립심,절약정신 등 자유와 번영의 기반이 되는 중요한 도덕적 가치를 갉아먹는 것은 물론 국가의 복지에 의지해서 살아가려는 의존심만 키우는 것이 국가복지의 치명적인 병폐이다.

따라서 복지 포퓰리스트들은 복지이념은 훌륭하고 멋진 세상의 개척자가 아니라 정작 수십,수백년의 문명이 창출한 소중한 것들을 갉아먹는 파괴자라는 것을 직시해야 한다. 복지주의의 본질은 파괴이다. 그것은 아무것도 생산하지 않고 오히려 자유와 사유재산에 기초한 사회질서가 창조하는 모든 것을 먹어치워 버릴 뿐이다.

복지가 나라를 망친다는 사실은 유럽사회가 또렷이 보여준다. 한때 라인강의 기적을 만들었던 독일 경제를 연 10% 이상의 실업률과 연 1% 내외의 저성장 늪으로 밀어 넣은 주범은 1970년대 이후부터 확장해온 인기영합적인 복지정책이었다. 더구나 복지정책은 독일 자본주의의 기반이 되는 책임과 절약 같은 도덕적 가치까지도 앗아갔다.

보편적 복지의 원조인 스웨덴 경제의 퇴보 역시 복지주의가 초래한 무서운 결과다. 1950년대 초까지 자유경제로 지속적인 번영을 구가했던 스웨덴 경제가 1950년대 말부터 강화하기 시작한 복지정책으로 일관되게 점차 추락하는 모습은 정말로 애처롭다. 드디어 1990년대 중반에는 극심한 경제위기를 맞았다.

고실업과 저성장을 극복하기 위해 독일과 스웨덴 경제는 수없이 많은 고통스러운 대수술을 받았지만 아직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의 복지선동가들이 이런 사례들을 일부러 외면하고 있는 것은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복지 포퓰리스트들이 직시해야 할 것은 복지주의는 지속가능한 번영의 원동력인 정치적,경제적 그리고 문화적 원칙을 송두리째 부순다는 엄연한 사실이다.

엄격한 '선별적 복지'를 지향하는 자유주의가 훌륭하고 멋진 사회의 선구자라는 것을 솔직히 시인하는 것만이 한국 사회가 자유와 번영의 길로 가는 첫 단계이다.

민경국 < 강원대 경제학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