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13일 발표한 물가안정 종합대책은 '인해전술'을 방불케 한다. 기획재정부 농림수산식품부 행정안전부 교육과학기술부 지식경제부 공정거래위원회 국토해양부 방송통신위원회 보건복지부 등 9개 부처가 동원됐다. 내놓은 대책도 공공요금 동결에서부터 가격 동향 파악,유통 과정 감시까지 다양하다.

하지만 △주요 생필품 가격이 이미 많이 올랐고 △정부가 통제할 수 없는 석유 곡물 등 국제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고 △인플레이션(물가상승) 기대심리가 확산되고 있어 정부의 물가대책이 얼마나 효과를 거둘지는 회의적이라는 시각이 많다.

◆온라인 음악 요금까지 감시

정부는 인플레이션 기대심리가 연쇄적인 물가 상승으로 이어지는 것을 걱정하고 있다. 물가가 오를 것이라는 기대가 커지면 경제주체들이 실질소득을 보전하기 위해 제품가격이나 임금을 올리고,이로 인해 다시 물가 상승세가 촉발되는 악순환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원자재 식료품 공산품 개인서비스 등 거의 모든 부문에서 가격 감시를 강화하기로 한 이유다.

지경부는 석유제품과 석유 가격 점검반을 구성해 국제 및 국내 유가의 비대칭성과 인상 요인을 점검하기로 했다. 또 공산품 및 원자재 가격 안정 태스크포스(TF)를 만들어 가격 인상 요인을 사전에 점검하고 인상 최소화를 유도하기로 했다. '설탕 가격 적정성 평가 시스템'을 구축해 분기별로 설탕 가격이 적절한 수준인지도 점검한다는 방침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서민 생활에 밀접한 103개 품목의 가격을 주 단위 또는 수시로 점검하고 사후적인 단속 위주로 이뤄지던 시장 감시 방식을 바꿔 가격 인상 분위기가 확산되지 않도록 사전에 대응하기로 했다. 공정위는 석유류나 농산물에 비해 물가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은 온라인 음악판매 요금에 대해서까지 담합 행위를 적발해 필요한 조치를 취한다는 방침이다. 교과부는 대학 등록금,학원비,유치원비 동향을 집중적으로 살피기로 했다.

◆정부 "음료 가격 인상 과도했다"

시장에만 맡겨둬서는 물가 불안을 잠재울 수 없다는 것이 정부의 인식이다. 정부는 최근 음료 가격 동향을 예로 들며 '시장의 가격 결정 구조에 문제가 있다'는 인식을 드러냈다. 재정부에 따르면 최근 음료업체들은 원재료인 설탕 가격이 10%가량 올랐다는 이유로 제품 가격을 4~7% 올렸다. 그러나 음료 원가에서 설탕이 차지하는 비중은 4.5%에 불과해 설탕 가격이 10% 오르더라도 전체 원가 부담은 0.45%밖에 늘지 않는다는 것이 재정부의 설명이다. 제품 가격을 0.45%만 올리면 원가 상승분을 만회할 수 있는데 필요 이상으로 가격을 많이 올려 소비자 부담을 키웠다는 것이다.

윤종원 재정부 경제정책국장은 "원가 상승분을 반영하는 것은 상관없지만 물가 상승기에 너도나도 가격을 올리는 편승 인상과 필요 이상으로 가격을 올리는 과다 인상이 나타날 수 있다"며 "이런 부분에는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김동수 공정거래위원장은 "가격 거품 논란이 있는 제품은 원재료 도입부터 소매 판매까지 유통 과정을 조사한 다음 제도를 개선하고 행태를 시정하겠다"고 말해 분위기에 휩쓸려 가격을 올리는 행위에 강력히 대처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물가상승 압력 더 높일 수도

공공요금 동결과 시장가격 감시를 뼈대로 한 정부의 물가안정 대책의 실효성에 대해 전문가들은 회의적인 평가를 내렸다. 국제유가 등 대외 부문의 물가 상승 압력이 지속돼 인위적으로 가격을 억누르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한국이 주로 수입하는 두바이유는 지난 12일 배럴당 94.23달러로 6개월 전보다 30% 넘게 올랐다. 같은 기간 밀 가격도 t당 190달러대에서 280달러대로 40%가량 상승했다. 오히려 어느 시점에 가서는 가격 억제가 한계에 이르러 물가 상승 압력이 폭발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이근태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가격 인상을 억제하는 것은 단기적으로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를 낮추는 효과는 있겠지만 장기적으로 지속되기는 어려운 정책"이라며 "공기업들의 재무구조 악화를 감안하면 공공요금 인상도 무한정 미룰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박승록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석유류 채소류 등이 최근 물가 상승의 핵심인데 공산품 가격까지 억누르겠다는 것은 과도한 시장개입"이라고 말했다.

유승호 기자 us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