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는 몽둥이로 때려잡는 것이다. "

2000년 초까지만 해도 재정경제부 물가 담당 관리들은 이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물가정책국장으로 발령이 나면 앞뒤 안 가리고 물가 잡기에 매달렸다. 자신이 물가 담당으로 있는 한 물가는 절대 오르면 안되는 일이었다. 이른바 '님트(not in my term)현상'이다. 그렇게 해서 물가관리에 성공하면 요직으로 영전했다. 모 정권에서는 물가 담당 국장을 거쳐야 실세로 통하기도 했다.

이런 물가정책국이 없어진 것은 2007년 노무현 정부 때다. 소비자보호 기능이 공정거래위원회로 이관되면서 그런 것이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는 물가가 더 이상 통제의 대상이 아니라 시장 원리에 의해 움직이도록 해야 한다는 취지에서였다.

이후 물가정책국(당시 국민생활국)은 생활물가과(지금은 물가정책과)로 조직과 기능이 대폭 줄어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연초 물가 불안에 이명박 대통령까지 나서 물가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있지만 정부의 대응방식을 보면 2007년 이전으로 회귀하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들 정도다. 심지어 '경쟁촉진'이 주 업무인 공정거래위원회가 물가기관을 자임하고 나선 것은 국제적인 웃음거리라는 지적도 나온다. 최근 물가 상승은 과도하게 풀린 유동성에 따른 원자재 가격 상승,임금 인상 등 비용상승(cost-push)형 인플레이션이라는 점에서 과거처럼 물가를 정부가 인위적으로 짓누르는 대증요법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게 대다수 전문가들 지적이다. 오히려 수요와 공급,금리와 환율 등 거시적 측면에서 접근하는 게 옳은 방향이라는 것이다.

정부가 13일 물가종합대책을 내놓는다. 근본 처방을 내놓으라는 이 대통령의 강한 주문이 있었던 만큼 어떤 대책들이 나올지 궁금하다. 과거처럼 단기적인 물가 단속과 통제에만 집착한다면 시장에 부작용을 초래할 소지가 크다는 우려도 존재한다.

같은 날 한국은행은 금융통화위원회를 열어 기준금리 방향을 논의한다. 최근 물가 오름세가 심상치 않은 만큼 금통위가 인플레 기대 심리를 잠재우기 위해 현재 연 2.50%인 기준금리를 인상하지 않겠느냐는 전망이 최근 들어 나오고 있다. 하지만 금통위는 지난 6일 발표한 '2011년 통화신용정책 운영방향'에서 물가안정에 방점을 찍으면서도 국내외 금융 · 경제 상황의 변화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겠다는 단서를 단 만큼 이번에는 기준금리를 손대지 않고 조만간 인상할 수 있다는 '신호'를 보내는 정도에서 그칠 것이라는 견해가 더 많다.

물가지표로는 한은의 '2010년 12월 생산자물가지수'(10일),'12월 수출입물가지수'(14일)가 발표된다. 생산자물가지수는 소비자물가에 선행하는 지표라는 점에서,수입물가는 최근 국내 물가 상승의 주 요인 중 하나란 점에서 추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12일에는 통계청의 '2010년 12월 고용동향'이 나온다. 고용은 최근 경기지표 가운데 그나마 긍정적이다. 우려했던 청년실업률도 6%대로 떨어졌고,민간 중심의 취업자 증가도 이어지고 있다. 고용은 경기에 후행하는 만큼 경기호조가 뒤늦게 고용 회복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연초부터는 대졸 실업자들이 대거 쏟아져 나올 가능성이 커 고용지표가 다시 악화될 소지도 있다.

경제부 차장 jtch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