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데스크] 라응찬과 김승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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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금융계 최대 미스터리는 '신한사태'다. 안에서 해결할 일을 왜 검찰로 갖고 갔는지 여전히 의문이다. 이른바 '빅3'가 모두 물러나는 자충수가 될 줄 몰랐는지도 궁금하기 짝이 없다. 그걸 몰랐으면 바보다. 알고도 일을 벌였으면 무모하다. 바보이거나 무모한 사람만이 할 일을 자초했다면 뭔가 말 못할 사연이 있을 게 분명하다.
이백순 전 신한은행장은 사석에서 "무덤까지 갖고 갈 사정이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뭔지는 모른다. 다만 라응찬 전 신한금융지주 회장이 관련됐을 것이라는 건 누구나 추측할 수 있다. 물론 라 전 회장은 법정에 서는 수모를 피했다. 하지만 그가 받은 상처는 상당하다.
몇 해 전 신한은행 직원에게 물었다.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 누구냐"고."라 회장님"이라는 답이 곧바로 튀어나왔다. 그 직원을 지난달 만나 "아직도 라 회장을 가장 존경하느냐"고 물어봤다.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런 점에서 보면 라 전 회장은 올 금융계 최대의 패배자다. 사외이사들이 그의 뜻과 달리 서진원 전 신한생명 사장을 신한은행장으로 선임했다는 사실을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그렇다.
라 전 회장과 비교되는 사람이 김승유 하나금융지주 회장이다. 1997년부터 하나은행과 하나금융을 이끌고 있는 장수 최고경영자(CEO)다. 신한사태가 터지자 금융계의 시선은 김 회장에게도 쏠렸다. 라 전 회장과 도매금으로 '황제 대리인'으로 언급되기도 했다. 그런 그가 외환은행 인수를 성사시켰다. 그에 대한 폄하의 말은 쑥 들어갔다. 누가 뭐래도 올 금융계 최대 승자는 김 회장이다.
라응찬과 김승유.두 사람은 닮은 점이 많다. 십수년 동안 CEO를 맡으면서 신설 은행을 대형 은행으로 키워냈다. 특유의 카리스마로 조직력을 극대화했다. 외풍을 막아내는 힘도,위기돌파 능력도 빼어났다. 직원들도 한결같이 "두 사람 없는 조직은 생각할 수 없다"고 말할 정도로 존경을 받았다.
다른 점도 상당하다. 라 전 회장은 조용하다. 우직하고 끈질기다. 밖으로 드러내기보다 '우리끼리'를 좋아한다. 변화보다는 안정을 선호한다. 일본식이다. 김 회장은 금융계에서 '지략가'로 통한다. 환경 변화에 대응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우리끼리보다는 개방적 문화를 선호한다. 서구적이다. 이 다른 점이 올 두 사람의 희비를 갈랐다.
라 전 회장에겐 가슴 아픈 한 해였겠지만,신한금융은 역설적으로 새로운 기회를 잡았다. 신한금융이 자랑하는 신한문화(신한웨이)는 어떻게 보면 '라응찬식 문화'였다. 우직하고 끈질기게,조직을 위해 몸을 던지는 열정으로 똘똘 뭉치는 문화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변화를 거부하고,자기들만 위하는 '끼리끼리 문화'도 배어 있었다. 그 끼리끼리 문화의 한계가 바로 신한금융 내분사태다.
라 전 회장의 퇴진은 신한 문화의 변화를 뜻한다. 30여년 동안 고착됐던 구각(舊殼)에서 탈피할 기회라는 의미다. 장점은 살리고 나쁜 점은 고칠 절호의 찬스이기도 하다. 서진원 신임 신한은행장에게 거는 직원들의 기대가 큰 것도 변혁의 시대를 제대로 이끌어 달라는 바람 때문이다.
경인년 마지막 날이다. 한번쯤 한 해의 손익계산서를 써보는 시점이다. 이익을 남겼으면 기꺼이 기쁨을 만끽하자.손실을 봤더라도 기죽을 필요는 없다. 잘못된 점을 고치면 된다. 새해엔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그래서 새해는 설레는 법이다. 송구영신(送舊迎新).
하영춘 경제부 금융팀장 hayoung@hankyung.com
이백순 전 신한은행장은 사석에서 "무덤까지 갖고 갈 사정이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뭔지는 모른다. 다만 라응찬 전 신한금융지주 회장이 관련됐을 것이라는 건 누구나 추측할 수 있다. 물론 라 전 회장은 법정에 서는 수모를 피했다. 하지만 그가 받은 상처는 상당하다.
몇 해 전 신한은행 직원에게 물었다.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 누구냐"고."라 회장님"이라는 답이 곧바로 튀어나왔다. 그 직원을 지난달 만나 "아직도 라 회장을 가장 존경하느냐"고 물어봤다.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런 점에서 보면 라 전 회장은 올 금융계 최대의 패배자다. 사외이사들이 그의 뜻과 달리 서진원 전 신한생명 사장을 신한은행장으로 선임했다는 사실을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그렇다.
라 전 회장과 비교되는 사람이 김승유 하나금융지주 회장이다. 1997년부터 하나은행과 하나금융을 이끌고 있는 장수 최고경영자(CEO)다. 신한사태가 터지자 금융계의 시선은 김 회장에게도 쏠렸다. 라 전 회장과 도매금으로 '황제 대리인'으로 언급되기도 했다. 그런 그가 외환은행 인수를 성사시켰다. 그에 대한 폄하의 말은 쑥 들어갔다. 누가 뭐래도 올 금융계 최대 승자는 김 회장이다.
라응찬과 김승유.두 사람은 닮은 점이 많다. 십수년 동안 CEO를 맡으면서 신설 은행을 대형 은행으로 키워냈다. 특유의 카리스마로 조직력을 극대화했다. 외풍을 막아내는 힘도,위기돌파 능력도 빼어났다. 직원들도 한결같이 "두 사람 없는 조직은 생각할 수 없다"고 말할 정도로 존경을 받았다.
다른 점도 상당하다. 라 전 회장은 조용하다. 우직하고 끈질기다. 밖으로 드러내기보다 '우리끼리'를 좋아한다. 변화보다는 안정을 선호한다. 일본식이다. 김 회장은 금융계에서 '지략가'로 통한다. 환경 변화에 대응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우리끼리보다는 개방적 문화를 선호한다. 서구적이다. 이 다른 점이 올 두 사람의 희비를 갈랐다.
라 전 회장에겐 가슴 아픈 한 해였겠지만,신한금융은 역설적으로 새로운 기회를 잡았다. 신한금융이 자랑하는 신한문화(신한웨이)는 어떻게 보면 '라응찬식 문화'였다. 우직하고 끈질기게,조직을 위해 몸을 던지는 열정으로 똘똘 뭉치는 문화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변화를 거부하고,자기들만 위하는 '끼리끼리 문화'도 배어 있었다. 그 끼리끼리 문화의 한계가 바로 신한금융 내분사태다.
라 전 회장의 퇴진은 신한 문화의 변화를 뜻한다. 30여년 동안 고착됐던 구각(舊殼)에서 탈피할 기회라는 의미다. 장점은 살리고 나쁜 점은 고칠 절호의 찬스이기도 하다. 서진원 신임 신한은행장에게 거는 직원들의 기대가 큰 것도 변혁의 시대를 제대로 이끌어 달라는 바람 때문이다.
경인년 마지막 날이다. 한번쯤 한 해의 손익계산서를 써보는 시점이다. 이익을 남겼으면 기꺼이 기쁨을 만끽하자.손실을 봤더라도 기죽을 필요는 없다. 잘못된 점을 고치면 된다. 새해엔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그래서 새해는 설레는 법이다. 송구영신(送舊迎新).
하영춘 경제부 금융팀장 ha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