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은 인간의 본능적인 욕구죠.노숙자들이 쉼터를 찾지 않고 그림을 그리거나 낙서하는 것을 보면 미술에는 어떤 마술 같은 게 있는 것 같아요. 제 작은 노력으로 미술치유가 한국에도 확산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 공동개최한 미술치유 워크숍 참석차 내한한 조안 필립스 미국 시각미술치유협회장(53 · 사진)은 28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미술은 현대인들의 우울증이나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정서적 불안감을 치유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1977년부터 미술치유사 활동을 해온 필립스 회장은 미국 오클라호마 청소년재활센터 임상 컨설턴트,뉴욕대와 오클라호마대 교수로 활동하며 학교나 병원 등 사회시설의 미술치유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미술치유는 말로 표현하기 힘든 느낌이나 생각을 자유롭게 그리게 한 후 감정적 스트레스를 완화시켜주는 '아트 테라피(art therapy)'다. 1960년대 말 미국과 영국을 중심으로 시작됐다. 우리나라에서 본격적으로 현장에 적용된 것은 1990년대 이후다.

그는 살인 폭력 마약 등 산업사회의 병폐로 얼룩진 현대인들의 '불안 증후군'을 효과적으로 치료하는데 '아트 테라피'가 적격이라고 강조했다.

"미술치유사들은 사람들의 감정과 과거 사건,세계관 파악에 그림을 활용하지만 미술만으로 의견을 내고 진단하거나 계획을 세우는데는 불충분하지요. 그러나 그가 살아온 이야기,인지능력,스트레스,트라우마,건강 상태를 종합적으로 판단하는 수단이 될 수 있습니다. "

그는 "사람들은 자신의 감정이나 경험을 말하지 않아도 미술을 통해 사물을 표현하는 데 매우 뛰어나다"며 "청소년이나 아이들이 그린 그림은 아주 섬세하고,때로는 불안감을 드러내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젊은 시절부터 그림을 잘 그리는 화가였던 그는 1977년 미술치유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그가 미술치유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선 것은 마음 속에 담아둔 힘든 이야기들을 꺼내기 쉽게 도와주는 도구의 역할에 흥미를 느꼈기 때문이다. 그가 그동안 미술을 통해 치유한 환자들만 1만여명에 달한다.

"현대사회는 시각적으로 미디어의 과부화에 걸려 있어요. 단순하게 의자에 앉아 의사소통하는 것을 넘어 휴대폰,인터넷 등 매스 미디어를 통해 소통하는 것이 자연스러워지고 있죠.청소년들이 겪은 충격적인 사건을 단순한 이미지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게 흥미롭더군요. "

미술치유는 창작을 활용한 '휴먼 서비스'라고 그는 말한다. 미국의 시각미술치유협회 등록 회원은 5000명 이상.음악 연극 무용 등을 활용한 아트 테라피 종사자들을 합하면 2만명이 훌쩍 넘는다.

미술치유사로서 그의 철학은 확고하다. 그는 "남들과 의사소통하는 게 어려운 사람,가족들에게 버림받거나 학대당한 아동들을 지원하는 게 내 인생의 목표"라며 "한국은 많은 미술가들이 활동하고 있는 만큼 여기에 소프트웨어를 지원하면 미술치료가 더 크게 발전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모든 창조적인 예술은 처음 만난 사람과의 딱딱한 분위기를 깨주고 편안한 관계를 만들어줍니다. 아주 단순한 그림도 청소년의 감정과 사고 과정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창문이 되거든요. "

그는 첨단 정보기술(IT)의 발달에 힘입어 미술치유도 다양한 방식으로 진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과거에는 미술치유가 복지차원에서 진행됐지요. 최근에는 창의성에 관한 관심이 커지고 있기 때문에 대상을 어떻게 새로운 시각으로 보고,창조적인 방식으로 치료할 수 있는지 생각해보는 단계까지 왔습니다. 예를 들어 병원에 있는 환자를 대상으로 한 의료치료 외에도 정서적 안정을 위해 미술치료가 적극적으로 응용될 수 있을 거예요. " 그는 29일 서울문화재단 대학로 연습실에서 미술치유 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